“그래서 지금 저는 이사님이 가지고 계신 사업개발팀에서 만든 M&C 프로포절을 기반으로 어제 브랜드숍 런칭 품의서를 작성 완료하였고, 이제 결재만 올리면 됩니다.” 민이사는 신대리가 이팀장이 왜 어제 회식 자리에서 그를 따돌렸는지, 다른 직원들이 왜 왕따를 시키는지, 현재 마케팅부 직원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열정이 없는지 등 세부적인 문제점들을 꼬집어 얘기해주기를 기대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M&C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자 다소 아쉽기도 하였으나, 내심 신대리가 진정으로 자기 브랜드를 사랑하는 타고난 마케터구나 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번진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신대리가 한 얘기는 민이사 정도면 그간의 보고서만 보더라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서 그리 새로울 게 없었지만, 민이사는 처음 소 도살장 끌려 가듯이 풀이 죽어 있었던 신대리가 M&C에 대해서는 어린 애 마냥 신나서 입이 마를 새도 없이 떠들어대는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아 차마 그의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 품의서를 나도 빨리 보고 싶으니, 오늘 바로 결재 올리고, 그 외 일하다가 어렵거나 힘든
며칠 후, 신대리는 민이사의 부름에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그 짧은 한마디 속에도 변함없는 민이사의 활기와 자신감을 느낀 신대리는 더욱 기가 죽는 것만 같았다. “찾으셨습니까?” 문가에서 쭈삣거리는 신대리를 보고 민이사는 말했다. “어! 신대리, 어서 와. 이리 와서 앉지 그래?” 신대리는 민이사 책상 앞 회의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 앞에서 의자에 앉기까지의 극히 짧은 시간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신대리의 심장은 더욱 요동치고 입술은 바짝 말라만 갔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신대리는 속으로 깊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신대리, 지난 번에 같이 어울리지 않고 그냥 그렇게 가서 좀 서운했어?” 의외로 다정스런 민이사의 말에 신대리는 뭐라 할말이 없어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내가 요즘 너무 경황이 없어서, 신대리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렇잖아도 사장님께서 신대리 얘기를 하며 예전에 신대리가 만들었던 보고서를 읽어보라고 주셨는데, 여태 못 읽었다가 오늘 아침에야 읽어보게 되었지 뭐야? 그런데 말이야….” 민이사는 잠시 말을 끊고는 머그컵에 가득
“네, 이사님, 저 그게…, 마케팅부 신대리입니다.” “어? 근데 오늘 왜 참석 안 했지? 저리 가서 함께 하지 그래?” “아닙니다. 일이 있어서 오늘은 좀…, 다음에 뵙겠습니다.” 신대리는 얼른 계산을 마치고 도망치듯이 뛰쳐나왔다.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어쩌지를 못하며 도망 나온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얼떨결에 따라 나온 김대리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참에 민이사님이랑 같이 한잔 하며, 얼굴 도장도 확실하게 찍지 왜 도망 나와요?" “그러게, 김대리. 나도 잘 모르겠네. 내가 이팀장 때문에 점점 바보가 되가나 보다.” 김대리는 뭐라고 한말 더하려다 신대리의 표정을 보고는 하고 싶었던 말을 참고 말했다. “그럼, 어디 다른데 가서 한잔 더할까요?” “아냐, 오늘은 그만 집에 갈래. 내일 보자.” 신대리의 심각한 표정에 김대리도 알았다는 듯이 그를 더 이상 잡지 않고 발길을 돌리려다 다시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신대리님, 지난 번 제게 말씀 하신 것 있죠? 거~ 외~, 만천과해(瞞天過海)란 말이요. 저는 신대리님 했던 그 말이 꽤 인상 깊어서 인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답니다. 만천과해~! 꼭 잊지 마세요. 오늘은 이만
갓 인쇄되어 나온 따뜻한 종이 한 다발을 가지런히 철한 후, 신대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엄청난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벌써 밤 9시가 넘었다. 안산의 금형 거래선을 방문하고 사무실에 들어온 때가 오후 7시였다. 사무실은 오늘따라 모두 일찍 퇴근했는지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다. 오늘에야 말로 꼭 브랜드숍 런칭 품의서를 끝내고 말겠다는 욕심에 저녁 식사도 거른 채 너무 일에 몰두했나 보다. 그리고 마침내 신대리는 책상 위에 품의서와 각종 첨부문서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을 대견스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 하나를 드디어 끝냈다는 기쁨보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 처해 있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제 런칭 품의도 다 끝났는데, 이팀장의 결제를 받아야만 하니….’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그때 고요한 적막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함께 안산에 다녀온 김대리였다. “아직 안 들어 가셨어요?” “응, 런칭 품의서를 마무리 하느라고, 그런 김대리는 왜 여태 있어?” 신대리는 그간 협력업체를 함께 다니며 김대리와 매우 친해져서 세살 터울인 그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었다. “저도 들어와서 일 좀 정
“안녕하십니까? 마케터 여러분! 오늘 근 5년 만에 다시 우리회사에 돌아오게 되어서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같은 훌륭한 인재들과 함께 근무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고,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어 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과거 나와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도 있어서 알겠지만, 그 때만해도 우리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강력한 일등 브랜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일등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급변하는 시장환경 속에서 이제는 일등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으며, 이에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당장 변해야 합니다. 따라서 나는 지금부터라도 당장 일등을 할 수 있는 전략만을 구사할 것입니다. 비록 회사 전체 규모로 볼 때 대기업인 경쟁사들을 이기고 일등이 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세분시장 내에서는 우리가 일등을 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나를 믿고 따라 온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탓하는 일 또한 절대 없을 것을 약속 드리며 짧게나마 인사말을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각 팀별 업무 보고를 일주
신대리는 포장개발팀 김대리의 도움으로 전반적인 신제품 개발과정과 절차에 대해 알 수는 있었으나, 주로 포장재 개발에 치우치다 보니 역시 BM의 도움 없이는 일이 여전히 힘들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소했던 포장재에 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 하더라도 지금으로선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 동안 플라스틱은 다 똑 같은 플라스틱인 줄만 알았는데, 거기에도 ABS, AS, PE, PET, PVC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그 쓰임새가 용기의 디자인 및 특성에 따라 모두 다르게 적용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포장개발팀을 비롯하여 R&D 및 디자인팀이 신제품 개발을 착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제품 런칭(Launching) 계획 품의”를 작성하여 CEO의 결재를 받아야만 비로소 일이 진행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신대리는 마케팅에 와서 2주간 다른 BM들이 해왔던 과거 품의서 자료를 봐왔기 때문에 런칭 품의서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작년에 사업개발팀에 있으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만들었던 M&C 사업계획서를 더욱 구체화하여 실행 계획(Acti
포장개발팀에서는 디자인팀에서 제시한 목업(Mock-up)을 바탕으로 제품과 금형(Mold)을 설계하는데, 이때 그 디자인이 양산(Mass Production)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발견하였고 이에 따른 개발의 문제점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디자인은 촉박한 출시 일정이라는 이유로 수정 없이 최종 결정되어 그대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협력업체를 통해 금형을 개발하고 포장재를 생산, 구매함에 있어서 아미앙떼 디자인을 바로 소화할 수 있는 업체는 결국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이미 관여했던 유일한 A 업체뿐이었다. 자재 구매팀은 기본적으로 거래선을 다원화해서 유사 시의 위험을 분산시키는 한편, 거래선 간 경쟁을 통해 품질을 향상시키고, 구매단가를 떨어뜨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디자인에서 진행했던 A 거래선으로만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케팅 BM의 조율 및 의사결정이다. BM은 각 개발 관련 팀의 의견을 수렴해서 우수한 상품이 나올 수 있도록 매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BM이 기본적으로 포장재 개발 과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며, 또한 포장재 관련 업무는
그렇게 또 한 순배 술을 돌리고 나자 포장개발팀의 김대리가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근데, 오늘 신대리님을 만나자고 한 것은 과거 일을 얘기하자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M&C 브랜드 계약이 완료되었다고 하는데, 제품 개발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희가 당부드릴 것도 있어서 입니다.” 김대리는 약간 코맹맹이 목소리에 느릿한 말투가 사투리는 쓰지 않았지만, 마치 ‘나는 충청도 출신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아니나 다를까, 충청도 대천 출신으로 부모님이 논밭 팔아 공부시켜 간신히 회사에 취직했다고 우스개 소리도 하는, 이제 갖 대리가 된 신대리보다 3살 아래의 후배였다. 그는 포장재를 개발함에 있어, 제품설계와 금형개발 거래선을 연결하고, 그 과정에 개발된 포장재 거래선을 자재구매팀에 연결시켜주는 한편, 최종적으로 생산에 포장재가 입고되면 공장 품질관리팀에서 제대로 QC(Quality Control)를 할 수 있도록 표준견본을 잡아주는 포장개발의 총체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신대리는 오기 전부터 오늘 만남의 목적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드디어 자신이 바랬던 주제가 나오자 내심 기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평소 감자탕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신대리는 뒷 골목 감자탕집을 항상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지, 문을 열고 들어오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랴부랴 서둘러 나왔지만, 이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좁은 감자탕집은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신대리는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가 없어서, 들어서자 마자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면서 일부러 사람을 찾는다는 듯이 크게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 때 기둥 옆 모퉁이에서 신대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대리님, 여깁니다.” 신대리는 무의식적으로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인사를 하였다. 자리를 찾아 앉으면서 그는 솔직히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 조차 궁금하였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마케팅부에 온 신대리입니다. 반갑습니다.” 지금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약간은 미안함과 두려운 마음을 갖고 신대리는 조심스럽게 인사하였다.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포장개발팀의 박과장입니다. 먼저 제가 우리 쪽 사람들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이쪽은 저랑 같이 근무하고 있는 포장개발팀의 김대리, 심대리이시고, 그리고 이쪽은 자재팀의 박대리이십니다.” 박과장은 직장생활에 어울리지 않을 것
신대리는 약간은 어색한 느낌과 불안한 마음으로 이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팀장 밑에서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그로서는, 사실 과거 그 때문에 김상무가 물러나고 이팀장도 회사를 떠날 위기까지 갔던 사실을 떠 올리며, 참으로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이팀장은 의외로 호탕하게 웃으며 신대리를 반겼다.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우리 함께 다시 시작해보자는 이팀장의 밝은 환영 속에서도 신대리는 그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속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신대리는 이팀장을 대면하고 36계에 나오는 소리장도(笑裏藏刀)가 생각났다. 즉 이팀장은 가슴에 비수를 숨기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상냥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것만 같아 보였다. 아예 이팀장이 회사의 대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얼굴 보며 일하게 됐지만, 그 동안 너 때문에 힘들었고 난 지금도 네가 싫다는 등의 솔직한 마음을 보였다면 오히려 이팀장을 대하기가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 만남이었다. 이제는 어엿한 BM으로 자리를 잡은 신대리는 드디어 그도 저들과 동등한 존재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감개무량함을 느꼈지만, 1년 전 시장조사 담당자로서 소외를 받았던 마
M&C 계약 조인식은 신대리의 체크 리스트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그나마 계약서 싸인 후 기념촬영할 때 신대리도 박성준의 등떠밈에 마지못해 제일 뒷줄에 서서 결국 사진 속 인물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사진기의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마치 브로드웨이 데뷔에 성공한 신인배우에게 쏟아지는 찬사들이 모두 그 하나만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눈 부신 플래시 빛에 간신히 눈을 뜨며 순간순간 투영되어 떠오르는 그 간의 고생을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한껏 밝은 미소를 지었다. 몇 장의 사진 촬영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대리는 거의 2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끝나고 강남역에서 함께 뭉친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그간의 고생을 맘껏 날려 보내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나 신대리는 마음 속으로 즐거울 수가 없었다. 팀원들에게 얘기하지 못한 비밀을 이제는 털어 놓을 때가 왔기 때문이다. 2차로 나이트 클럽에 춤추러 가자는 박성준의 제의를 거절하고 신대리는 조용한 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대리님, 오늘 같은 날 갑자기 왜 이리 심각하시죠?" 박성준이 여느 때와는 틀린 신대리가
미셸 리는 확실히 프랑스인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비지니스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수 년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쌓아온 경험으로 M&C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큰 성공을 하리라는 동물적 감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녀는 사업개발팀원들의 열정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다른 어떤 일들 보다 우선적이고 적극적으로 M&C에 매달렸으며, 그녀의 노력과 협상력의 결과로 M&C본사도 어느새 그녀의 열정을 믿기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 사업개발팀원들은 수 십 번도 넘게 프로포절을 만들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힘들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고, 신대리는 그 어떤 일들보다 기다리는 일이 가장 힘든 일임을 새삼 느꼈다. 그 와중에도 사업개발팀원들은 M&C 이외에 송팀장이 던져준 남성용 및 헤어 브랜드로 또 다른 해외 라이센싱 사업을 진행하는 등 여전히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 해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M&C의 라이센스 계약이 회사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계약기간은 5년이고, 러닝 로열티는 매출실적 등급별로 3~5%를 지급하며, 미니멈 로열티도
“36계에는 이대도강(李代桃僵)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복숭아나무 옆에 자두나무를 심어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에 병충해를 입게 해서, 더 가치 있는 복숭아 나무를 구한다라는 뜻으로, 큰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작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전략입니다. 이는 고육계(苦肉計), 즉, 자기 몸을 조금 상처 내는 대신 더 큰 것을 얻어내는 전략과도 일맥상통하죠. 전쟁이든 사업이든 어느 정도의 손실은 따르게 마련인데, 문제는 그 손실이 장기적으로 미래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냐는 것 아니겠습니까? 작은 손해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손실이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처음엔 먼저 손해를 보더라도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하면서, 그 뒤에 더 큰 이익을 챙기는 방식이 되어야겠습니다.” 신대리는 잠시 말을 끊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머리 속에만 있는 생각을 섣불리 먼저 말해야 할지를 잠시 생각하더니만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조삼모사(朝三暮四) 같은 잔 꾀도 필요합니다. 팀장님,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조삼모사를 또 설명해야만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조삼모사? 그래, 계속 얘기해봐요?” 신대리가 고사성어를 자주 쓰는 것
송팀장은 그 동안 항상 유리한 조건에서 일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자신의 성과가 날라갈 것 같은 리스크를 감내하기에는 무척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업개발팀의 업무 속성이 회사의 장기적인 이익 관점보다는 계약을 어떻게든 성사시켜 성과를 올리려는 성향이 다분히 강한 경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송팀장의 지금까지 경험이 그런 환경에서 익숙하다 보니 쉽게 모험을 하고 싶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게 판 자체가 깨져 버리면 안될텐데...." 결국 참다 못한 신대리가 또 다시 고사성어를 운운하며 설득에 나섰다. “팀장님, 36계에는 타초경사(打草驚蛇)란 말이 있습니다. 막대기로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말인데, 막대기로 치기 전까지는 풀 속에서 보이지도 않는 뱀이 어떤지 모르는 상황 아닙니까? 자칫 뱀에 물릴 수도 있고요. 풀을 쳐서 뱀을 유인한 후에야 비로소 물리지 않고 잡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우리의 안을 던지고 나서 상대의 동정을 살펴보는 전략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에겐 미셸리가 있잖아요. 그녀는 진짜 프로페셔널한 협상가 같던데요?" 신대리의 주장에 송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제스처로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뒤척이며 말
그렇게 준비가 다 끝나갈 즈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미셸리의 이메일이 늦지 않게 도착하였다. 이제부터 프랑스 측이 휴가 가기 전까지 사업개발팀 멤버들에겐 그들의 요구조건에 대한 회사의 프로포절을 만들고, 경영진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멀고도 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M&C의 요구사항을 검토해 보니 기대와는 달리 매우 부정적이었다. 계약 기간 3년에 미니멈 로열티(Minimum Royalty)는 2억원이고. 러닝 로열티(Running Royalty)가 매출액의 7%나 되었다. 미니멈 로열티는 매출실적과 상관없이 지급하는 고정금액으로서, 최종적으로 러닝 로열티를 정산할 때 공제하고 지급하기 때문에 실적만 좋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불확실한 환경에서 만약 브랜드가 실패하거나 기대 이하로 매출실적이 저조하게 되면, 실적과 상관없이 무조건 지불해야 하기에는 꽤 부담이 큰 금액이었다. 또한 러닝 로열티 7%도 신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 개발비뿐만 아니라 막대한 광고판촉비를 써야 하는 한국시장에 있어서 꽤나 부담가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M&C 브랜드를 화장품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한 자금여력이 부족하게 된다면 이번 사업의 매력도는 그리 좋을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