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도 지나고 학교에는 또 다시 축제가 무르익어 가는 5월, 그는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깨기 위해 시끌벅적한 교정을 거닐며, 나름 한가로운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그러나 캠퍼스 곳곳에 퍼지는 웃음소리와 한껏 젊음을 발산하는 후배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 그의 굳은 입술 사이에도 한숨이 절로 베어 나왔다. ‘이러다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휴~, 부모님께 더 이상 손 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학 갈 형편도 아닌데…, 지금이라도 발벗고 나서서 취직자리를 찾아야 하나?’ 그는 이런저런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캠퍼스 구석구석을 꽤 많이 걸어 다녔는지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학생회관에 들어서자 그는 두리번거리며 어딘가 앉을 자리를 찾다가, 마침내 이미 여러 학생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너저분하게 신문들이 널려있는 자리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는 구석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신문 하나를 주어 들었는데, 다 그렇고 그런 따분한 얘기로 채워진 학교 신문이었다. 신문 머리글자만 일견 흩어 본 그는 따분함에 신문을 접으며 탁자에 던져 놓는 순간, 문득 광고 하나가 그의 눈을 사로 잡았다. [ 신입사원 모집 - L전자 ] 졸
머리가 아파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무척 한산했다. 버스 뒤쪽 빈 자리에 신대리는 몸을 던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버스가 몇 정거장을 지나도록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차창 밖만 내다봤다. 어느덧, 어두워진 거리에는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더니, 한 순간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마치 강렬한 빛으로 변해 그의 눈 앞으로 쏟아지듯 달려왔다. 순간 그는 아찔함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몰려오는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을 참으며 그는 간신히 창문을 조금 열었다. 가을 저녁 신선한 공기가 폐 속 깊이 찔러 들어오자 어느덧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가시는 것 같았다. 그는 용기를 내어 눈을 다시 창 밖으로 돌렸다. 차 창가를 휙휙 지나가는 가로수 넘어 상가 간판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이며, IMF시절 어렵게 취업을 준비했던 당시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대리는 IMF 환란이 기승을 부리던 세기말의 어둠 속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당시는 수십 년간 회사를 위해 목숨 바쳐 일했던 간부들이 거리로 내쫒기고, 수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나서 대한민국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었던 때
신대리는 갑작스런 연락에 어리둥절해 하며, 이것이 기회인지 위기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들 다 가고 싶어하는 유명 대기업 전자회사를 3년만에 과감히 때려치우고 화장품회사인 이곳에 들어 온지도 이미 2년이 지났건만, 그 동안 그가 한 모든 노력에 대해 회사는 대부분이 침묵해왔기 때문이다. "허어~ 이제 와서 마케팅이라니….” 자조 섞인 웃음이 자기도 모르게 베어 나왔다. 바로 한 시간 전, 외근 중에 갑자기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윤부장으로부터의 연락에 심상치 않은 뭔가를 느꼈지만, 이런 이동발령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었다. 사실 마케팅은 학창시절부터 그가 원했던 일이었으나, 이 회사의 마케팅부는 자신이 그리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대리는 그 동안 마케팅부에 대한 불만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소위 회사에서 잘난 사람들이라는 그들의 시장과 어긋나는 한심한 전략들에 휩쓸려, 영업부는 갖은 고생을 해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였고, 그 책임을 온통 뒤집어 써야만 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영업부의 안주거리 중의 하나가 바로 마케팅부였다. 그리고 특히 그는 가장 신랄하게 마케팅을 비판하는 사람으로서, 영업본부 내에선 회의시간
증권사의 올해 3분기 화장품 대기업의 예상 실적 수치를 보는 순간 기자는 아찔한 현기증(Vertigo)을 느꼈다. 실적이 곤두박질 치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업계의 쓴소리들을 기억해냈다.업계 관계자들 이야기에는 K뷰티의 현주소를 일깨워주는 내용이 많았다. “K뷰티가 잘 나가는 이유는 K팝이나 K드라마 등 한류 덕분이다. 일부 대업들이 자기들이 잘나서 물건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쿠션 이후K-뷰티화장품 가운데이렇다할 신기술이 나오지 않는다. 신생기업들의 아이디어가 더 시장에서 먹히고 있다. 중국 빼고는 아모레퍼시픽보다 낫다.” “사드 때문에 중국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아 면세점 매출이 반토막 났다. 명동은 파리 날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중국인 관광객 그림자도 없다. 면세점 매출은 싼커의 대리구매나 웨이상 통해 겨우 메우는 수준이다.” “색조화장품 C업체가 반품을 받아주지 않아 대리점마다 난리다. 해지계약도 안해준다.” “사드가 최소 1년은 더 갈 것이다. 중국이 호락호락한가. 사드 때문이 아니더라도 업체들의 옥석을 가릴 시점이 됐다. 사드라는 핑계로 경쟁력 없는 중국 진출 기업이 정리될 것이다.” “현재 화장품 판매제조업체, 화장품제조업체가 1만개를
“중국시장은 아직 법의 지배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라서 투자가 위험하다”는 게 서방기업의 시각이다. 아시아 제일의 갑부 리카싱도 2015년 중국에서 철수했다. 리카싱은 중국과 홍콩 부동산을 소유한 기업은 홍콩에 두고 다른 사업은 모두 케이먼군도로 옮겼다. 중국, 홍콩 모두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다. 중국 시장이 위험한 이유는 공산주의 국가로 절대 권력자가 제시하는 목표에 사회적 역량을 집중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사드 보복이 그 대표적 사례다. 중국 정부의 이해관계는 언제든 가변적이다. 롯데마트 사태는 정치적인 이유로 시장 질서에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국 보복이 시작되면 약한 나라 기업인은 서럽다. 정부의 미지근한 태도 때문이다. 개별 기업이 알아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북핵 위기와 사드 보복에 직면한 현실 인식은 파블로프의 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 장면 6 중국 정부는 내수 진작과 자국 산업 보호 및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유(U)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화장품도 주요 대상이다. 이미 각종 데이터를 통해 한·중 화장품 무역 역조를 개선하려는 중국 측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약진은 눈부
‘파블로프의 개’는 벨을 울리면 개가 침을 흘린다는 사실을 발견한 연구다. 벨을 울리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조건형성’이라고 한다. 조건형성은 본래 관계가 없던 두 가지 현상이 몇 번 같은 시기에 일어나면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원래 없던 자극으로 똑같은 반응이 일어나면 이후부터는 자동적으로 뇌에 회로가 형성된다. 더 나아가 벨을 울리고도 먹이를 주지 않는 등 일관성 없는 행동을 하면 개도 점차 침 흘리는 반응이 제멋대로가 된다. 반응이 거꾸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파블로프는 이를 ‘역설적 단계’라고 불렀다.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면 개는 혼란스러워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책하든지 아니면 상대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두려움에 떨며 안색을 살피게 된다. 세뇌는 안정제에 의존하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주지 않음으로써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역설적 단계에서는 지배하는 사람의 긍정적 반응이 안정제로 작용한다. 인간 행동을 조작할 수 있다는 파블로프의 생각은 냉혹한 기업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K-뷰티가 중국 시장에 목을 매달수록 고슴도치가 된 빅2를 제외한 중소기업의 미래는 희망적이지 못하다. * 장면 3 J대표는 중국에 갈 때마다 골치가 지근거린다. 거래처와의 계
사드 보복이 1년여를 넘기면서 여기저기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전방부문인 브랜드사의 매출 하락은 원료사의 주문 반토막의 충격으로 이어졌고 ODM업체는 주문 연기로 고전하고 있다. 모두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촉발됐다. 반면 코리아 프리미엄(한류)을 걷어내면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 올리기 힘든 시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글로벌 메이저와 중국 로컬기업 사이에 낀 샌드위치론이다.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황재원 KOTRA 동북아사업단장은 “중국 내에서 한국 기업과 교류가 많은 지역·집단은 사드 갈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중국도 한국 의존도가 낮지 않은 만큼 중국이 강경하게 나올 때 한국을 찌르면 중국도 아프다는 ‘고슴도치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 보복 완화에 희망을 걸기 보다는 사업을 접든지 아니면 차제에 고슴도치가 되라는 주문이다. 여우가 100가지 꾀를 부린다 해도 고슴도치가 몸을 동그랗게 말아버리면 그 꾀가 모두 소용없어진다는 ‘고슴도치 전략’을 펼 때다. 단순하면서 화장품 업종의 본질을 꿰뚫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장면 1 최근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보따리상들의 면세점 구매 제한 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