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0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약 18만 명이 넘는 참관객이 몰리면서 참여 기업들이 사업 창출의 기회를 모색했으리라 봅니다.
이번 행사를 참관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삼성·현대·LG와 같은 세계적 기업과 함께 약 300여 개의 많은 한국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이 참가한 점입니다. 유통 전문가인 제가 CES에 간 이유는 기존 고객사와의 소통과 한국 기업의 제품을 한곳에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참가한 해외 스타트업과 비교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접근성이 좋은 전시관은 역시 대기업의 차지였습니다. 특히 Tech East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같은 Tech East여도 South Hall 2층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파가 찾았으며, 남쪽의 South Plaza는 정말 한산했습니다. Tech West는 스타트업 전용관 ‘유레카 파크’가 있어 꽤 많은 인파가 몰렸지요. 물론 Tech East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전시회는 한 해 새로운 트렌드 리뷰를 확인하고 혁신 제품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런 내용은 사전에 수많은 전문가의 분석 자료를 검색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 전시회는 현지인 혹은 바이어나 투자자의 입장에서 부스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점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커뮤니티 공간이어야 합니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기대를 가지고 참가한 업체 또는 참관 업체에게 제대로 된 피드백을 전달하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대한민국 업체 부스는 거의 방문한 것 같습니다. 많은 한국 업체가 위치한 Tech West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느낌을 적어 보았습니다.
#1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어 놓고 판매할 생각을 한다”
실제로 좋은 제품이나 아이디어들은 넘쳐났습니다. 다른 국가 업체와 국내 업체 제품을 비교해 봤을 때 기술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고, 국내 업체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분명 신선한 제품인데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는 제품일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습니다.
“잠재 고객이 필요한 것을 권해야만 한다. 고객이 스스로 관심을 갖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정작 자사 제품 수준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이를 혁신이라 포장하여 참여한 많은 국내 업체들을 마주했습니다. 혁신을 강조하지만 과역 그 혁신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수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본인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해놓고 혁신이라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이미 어디선가 접해본 제품도 다수 눈에 띄었습니다. 경쟁사와의 차별점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후 진행하는 어떤 분야에서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러한 피드백을 수집하는 것이 전시회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부스를 방문해, 가능성을 엿본 업체와 대화하면서 솔직한 피드백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다들 수긍을 하면서도 불편한 내색을 숨기지 않더군요.
“자신감은 좋지만 자만심은 내려놔야 한다.”
처음부터 최고일 수 없고, 최고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는 점은 높이 살만 합니다. 다만 자신의 제품이 최고라는 자만심을 가지고 현지인의 피드백을 무시하면, 결국 스스로가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꼴이 됩니다. 소비자는 최고의 제품이나 세계 최초의 제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제품을 원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2 “관계의 시작은 소통이다”
부스를 방문할 때부터 나라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약 50개국에서 온 스타트업 업체와 마주했을 때 느낀 점은 친근함이었습니다. 우선 쉬운 영어가 눈에 띄었고 제품 설명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라도 농담을 섞어가며 말을 거는데, 어쩌면 전문 세일즈맨에 가까웠고 이 때문에 부스에 머무르는 시간이 자꾸 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한국 부스는 먼저 말을 걸 때까지 대부분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부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제품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더라도 가만히 바라보거나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리는 분이 대부분이었고요. 통역하시는 분이나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대부분이다 보니 방문객 대응에 너무 소극적이었습니다.
간혹 대표들이 짧은 영어에도 불구하고 직접 열심히 설명하는데, 방문자가 알기 원하는 제품 콘셉트에 집중하기보다는 흥미롭지 않은 제품 설명이나, 주문 물량을 묻는 등 판매에만 열중했습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수많은 부스를 돌아다녀야 하는 바이어 혹은 투자자 입장에서 제품 탄생 과정이나 역사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고, 당장 구매를 결심할 정도로 충분한 신뢰를 쌓은 사이도 아닙니다. 짧은 시간 내에 큰 임팩트를 가지고 바이어나 투자자 스스로 관심을 갖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3 “간단하고 쉽게 설명해라”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가 있죠. 준비해 온 홍보물이나 패키징에도 많은 문제점이 보입니다. 홍보물을 보면 딱 봐도 재미가 없습니다. 사진보다 글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어, 처음 느꼈던 관심이 금방 다 식어버리게 됩니다. 흥미를 유발시키는 홍보물을 통해 스스로 검색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하여 방문자로 하여금 금방 피곤하게 한다는 것이죠. 오히려 간단하고 쉽게 설명했던 이스라엘,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더 좋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번역도 무척 아쉽습니다. 대부분 구글 번역기를 이용한 듯합니다. 슬로건이나 제품 설명에서 완벽하지 않은 영어 문장들은 신뢰감을 급하락시킬 수 있으며 어떤 부분은 법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4 방문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제품을 확인한 방문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아야만 합니다. 보통 구글과 소셜미디어 채널을 검색해 제품 반응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웹사이트를 통해 제품 정보를 접하고, 다른 제품과 비교하며 인지도나 반응을 확인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품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할지 혹은 힘들게 얻은 관심을 한방에 날려 버릴지 결정이 납니다.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이를 공유하게 해야 한다.”
직접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전시회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를 잘 활용하는 업체는 많지 않았습니다. 홍보물이나 설명, 혹은 영상만으로 단시간 내에 제품을 알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설사 그들이 들었다고 해도 오래 기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단순히 소비자 관심을 받는데 끝나지 않고 제품이나 솔루션을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구매욕구를 자극하고 이 경험을 주위에 알리도록 해야만 합니다. 본래의 전시회 참가 목적은 단순히 고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전달함으로써 고객과 소통하고 피드백을 최대한 수집해서 수정할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합니다.
#5 지원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행사 마지막 날에는 조금 뜻밖의 장면들이 보입니다.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그런지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부스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아마도 바쁘지 않아서 다른 부스를 참관하러 가신 듯합니다. 간혹 이미 정리를 마친 빈 부스들이 눈에 띄기도 하고요. 과연 100% 자사 비용으로 참가했다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이 지원사업을 통해 참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북미에서는 100% 자사 비용이 참가가 일반적입니다.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원사업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지원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충분한 준비를 갖춘 업체가 마케팅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사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안타깝지만 지원사업 없이는 비즈니스 유지 조차 어려워 하는 업체가 간혹 눈에 보이더군요.
전시회 성과가 참여업체 개수로 포장될 게 아니라 실질적인 기회로 연결이 되는데 초점을 맞춰야만 합니다. 수많은 업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CES 전시회를 통해 미국이 얼마나 많은 경제 효과를 누릴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숙박비만 하더라도 평소의 몇 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방을 구하기 어려웠고 교통비를 포함한 체류비에 큰 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참관 비용도 다른 전시회와 비교해 훨씬 높은 수준이어서 아마도 부스로 참가 기업의 부담은 엄청나겠죠.
재주는 대한민국이 부리고 미국이 돈을 버는 구조로 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스는 시간당 고작 몇 명이 지나가는 곳도 수두룩합니다. 또 국가관도 참가 기업 숫자로 다른 국가와 경쟁하기보다, 퀄리티를 높여서 검증된 정예 업체 위주로 목 좋은 장소에 참여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전시회는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큰 기회를 얻거나 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전시행사로 그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려는 기업들은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피드백을 교훈 삼아 이를 성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수출 강국의 명성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ALC21 알렌 정 대표는...
ALC21의 창업자이자 대표 컨설턴트. Fuerza 북미대표, 제넥스엔터프라이즈 부사장, (사)식문화세계교류협회 해외홍보대사, 무역신문 칼럼니스트,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2017-2018 부산시 글로벌 마케터 등 한국과 북미의 커넥터이자 다양한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ALC21은 토론토를 거점으로 15명의 스페셜리스트와 마켓리서치, 세일즈 마케팅 등 6개 팀으로 구성, 한국과 북미지역의 70여 개 단체, 기업의 온라인 마케팅과 세일즈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