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현재 식약처 등록 화장품 제조업체는 2052개, 제조판매업체는 9696개다. 그중 빅2가 80% 매출을 차지하는 시장에서 나머지 업체들의 살아남기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레드오션이다. ‘적자생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마케팅에 모두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직장을 8번 옮기면서도 마케팅 외길을 걸었던 정통 마케터가 신윤창 전 세라젬헬스앤뷰티 한국·중국 대표다. LG전자-피어리스-애경-필립스전자-미니골드-LG생명과학-세라젬화장품 등 전자와 화장품 영역을 넘나들다 현재 한양대 박사과정 수학 중이다. 지인의 요청으로 5개 회사 컨설팅을 맡고 있다. 숱한 강의와 소통·미팅으로 페북에서 두터운 팬덤을 형성 중이다.
그가 30년 마케팅 경험과 이론을 소설 형식으로 정리한 ‘인식의 싸움’을 출간했다. ‘소비자 마음속에 제품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포지셔닝’을 쉽게 풀이했다. 본지 연재 중이다.
먼저 회사를 자주 옮긴 이유는? 질문에 그는 “회사·직장 상사와 자신 사이의 인식 싸움” 때문이라고 답했다. 마케팅 목적은 이익 창출인데 정작 타깃인 소비자보다 제품 중심 전략을 짠다는 것. 그 과정에서 의견 충돌과 리더의 독선, 군대식 문화 등이 갈등 요인이 됐다.
인식(認識)은 분별하고 판단하여 안다는 명사다. ‘~를 인식“ 다음에 붙는 서술어는 “높다, 부족하다, 바뀌다, 나쁘다” 등이다. ’~‘에 대한 앎은 결과를 규정한다. 신 전 대표는 “회사와 상사는 '제품’에 자신은 ‘소비자’에 각각 방점을 찍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싸움’이라고 표현한 것은 제품을 아는 회사와 소비자 니즈를 찾아야 하는 마케터의 ‘인식’ 차이로 성과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신 전 대표는 “회사는 업-다운 스트림(up-down stream) 조직으로, 업은 전략을 다운은 실행을 맡게 된다. 우리가 만든 우수한 제품을 또는 혁신 기술을 개발했으니 잘 되겠지 하는 데서 탁상머리 전략이 출발한다. 스텝은 소비자 부재 전략에 따라 실행 전술을 짜게 되니 비용과 시간만 낭비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마케팅 ‘포지셔닝’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조사하고 마인드를 빼앗아야 하는 게 첫 단추다. ‘소비자’를 가운데 놓고 소비자 조사→경쟁사 분석→마케팅 전략(제품 기획·R&D 등)의 프로세스 구축이다. 그는 “대부분 회사가 소비자를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역량과 여건, 비용에 매몰돼 회사 중심 전략을 짜게 마련”이라고 비판했다.
A회사는 중국·베트남 유통사로 최근 화장품 비중이 80%에 달해 매출은 증가하고 있으나 마진이 적어 한계에 부딪쳤다. 신 전 대표의 처방은 ‘회사 조직을 화장품 전문유통사로 바꾸고 제품기획 및 제조판매에 이르는 중장기 사업계획서 작성’이었다. 그는 “규모가 작아도 비전과 사업계획서를 공유함으로써 사장과 직원의 목표가 뚜렷해지고 ‘해보자’라는 도전 의욕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B사는 남성용 화장품 시장에 고기능성 제품을 출시했으나 시장에 먹히지 않아 고민이다. 신 전 대표는 △구매 패턴에서 선물로 고르는 여성을 타깃으로 가격 조정 △고기능성 제품의 리뉴얼 △여성용 제품 추가 △온라인 마케팅 집중 등의 컨설팅을 제안했다.
그는 “잘 만들기는 쉬우나 잘 팔기는 어렵다. 타깃을 최대한 좁히고 마케팅을 특화시켜야 한다”며 “단품으로 트렌드 선도나 소비자 프로모션 진행 등은 화장품에선 통하지 않는다. 아이폰처럼 세상에 없는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따라서 브랜드에 맞는 가치와 차별점을 집어넣고 소비자 인식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윤창 대표는 대학 전공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마케팅이 생업이자 공부가 됐다. 현장에서 뛰고 책상에서 독서하며 즐기는 경지다. 그는 매월 3권의 책 읽기를 목표로 한다. 2주는 마케팅 전공서적, 1주는 자기계발서 또는 리더십, 나머지 1주는 시·소설·에세이 등 교양서를 정해놓고 독서한다. 그는 마케팅을 읽고 말하고 강의한다. 그러니 내공이 층층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의 페친은 4892명, 글 올릴 때면 댓글이 100여 개 달린다. 오가는 말투가 격의 없고 친근하다. 리포트 제출 등 공부 틈틈이 마케팅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화장품산업이 포화다. 그래서 빅2를 제외한 나머지는 팔 데가 없다. 편집숍·H&B숍·홈쇼핑의 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돈과 시간, 설움에 ‘고난의 행군’ 중이다. 그래서 ‘메이드 인 코리아’ 하나 믿고 너도나도 중국·동남아 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드 때문에 일격을 맞았지만….
신윤창 대표는 “지금이라도 박람회에서 명함을 받았으면 중국을 누비며 소비자를 만나라”고 말한다. “좌판 깔고 바이어 기다리고, 따이공 통해 우회로 들어가는 식의 경영은 잘못된 것”이라며 “회사의 역량을 파악하고 소비자 인식에서 기회를 발견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신 전 대표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도 언급했다. 1인 기업 또는 중소기업이라도 계획서를 만들고 비전과 꿈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것.
‘먹고사니즘’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치환된다. 직역하면 ‘가장 적합한 자의 생존’이다. ‘가장 강한 자의 생존’은 ‘적합’과는 상관이 없다. 중간에서 누군가 ‘약육강식’ 의미를 더하면서 ‘강하다 약하다’를 생각했다. 적합(適合)은 환경에 대한 적응도(fitness)다. 환경이 변하면 적응도도 변하기 마련이다. 1인 기업과 중소기업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신 전 대표는 “손자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다. 나의 역량을 알고 소비자를 알면 백 번 시장에서 경쟁해도 위태롭지 않다. 중국에서 7년간 있으면서 현지화 추진 덕택에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나간다. 중소기업 리더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브랜드를 소비자 마음속에 집어넣어라.” 좀 더 알고 싶다면 그에게 페친 신청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