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 ‘황금돼지’를 잡기 위한 기업들의 열정은 세모에도 열기를 더했다. 러시아 화장품 수출의 1/7을 담당하는 고센코리아는 연초 120톤 전세수송기 선적을 통해 K- 뷰티의 비상을 알렸다.
#1 운명론자(Fatalist)
우연이 운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불과 4년 전 어느 날, 송명규 대표는 러시아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빠두루쉬카(Podrygka)의 이리나(Irina)라고 밝힌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로 한국의 화장품을 수입하고 싶다고 했다.
시차 때문에 새벽 4시라도 그는 기꺼이 전화를 받았고, 밤 12시 이메일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확인하고 즉각적으로 답장을 보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 이리나는 “송명규의 사업에 결정적인 인물”이 됐다.
작년 1월 송명규 대표는 한국 16개사 셀러와 함께 빠두루쉬카를 방문, 러시아 시장 현황 설명회 및 매장 방문 등의 행사를 가졌다. 만찬 자리에서 빠두루쉬카 회장은 “하느님이 맺어준 운명 같은 파트너가 고센코리아의 송명규 대표”라고 말했다. 회장이 수여한 ‘베스트 파트너상’은 보너스였다.
송명규 대표는 “고센코리아를 운명으로 생각한다는 회장의 말을 듣고 감명 받았다. 최선을 다하면 어떤 초인적 힘이 운명을 정해주리라 믿고 있었지만, 정작 이런 말을 해줄 사람을 만났다는 게...”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송 대표는 연구원 10년, 마케터 10년의 경력을 쌓았다. 그 세월 동안 다양한 삶을 마주했던 그는 “운명을 바꿔줄 사람은 있다”는 지론을 갖게 됐다. 창업을 결심하고 벼랑 끝 심정으로 작은 사무실을 얻을 때도 “운명을 바꿔줄 바이어는 있다”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신규 거래건 사소한 바이어라도 최선을 다하고자 했을 뿐…그는 어느덧 운명론자가 되어 있었다.
#2 시장 조성자(market maker)
그래서일까, 사명인 고센(goshen)도 이채롭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고센은 ‘땅의 언덕’이란 뜻. 지금의 카이로 동쪽 부근으로 옛날엔 목축에 알맞은 땅이었다고 한다.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 다시 만난 장소이며 그 가족들이 가나안에서 옮겨와 430년간 정착한 곳이다. 미국 내 지명 중 ‘고센’은 11개나 될 정도로 ‘약속의 땅’이다. 송명규 대표에게 고센은 ‘러시아’였다!
현재 러시아 내 23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빠두루쉬카는 세계 드러그스토어 체인 중 단위 면적당 매출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곳의 한국산 화장품은 고센코리아를 통해서만 입점이 가능하며, 80여 개 브랜드의 2000여 SKU가 송 대표의 손을 거쳐 공급되고 있다. 작년 한 해 금액으로 치면 1600만 달러에 달한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러시아 화장품시장의 알고리즘은 해외수출기업→대형·중소 디스트리뷰터→대형 소매체인·중소 리테일러·온라인 쇼핑·중소 뷰티숍, 약국→러시아 소비자의 유통구조다. 이중 고센코리아는 규모가 큰 디스트리뷰터로서 이른바 시장 조성자(market maker) 역할이다. 즉 연결자(connector)로 그치기보다 K-뷰티의 지속 발전을 위한 창조자(creator)로서의 기능을 중시한다.
송명규 대표는 “연구원과 마케터 경력을 발판으로 K-뷰티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는 자부심이 있다. 러시아 시장에 적합한 한국산 화장품을 발굴, 소개함으로써 한-러 화장품 교역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빠두루쉬카는 한국의 올리브영 같은 편집숍으로 스킨·색조·마스크팩 등 섹션별로 K-뷰티 제품을 구성한다. 이곳 한국산 화장품의 95% 이상이 고센코리아를 통해 입점한다. 월급쟁이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이력에서 보듯 송명규 대표의 인디(indie)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유별나다.
송 대표는 “마켓 메이커이라면 정교한 마케팅은 필수다. 매달 발행부수 40만부의 뷰티 매거진과 카탈로그 등에 지속적으로 광고하며, 1년 스케줄을 통해 거래사의 제품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물론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SNS 마케팅도 병행한다”고 소개했다.
특히 송 대표가 심혈을 기울이는 게 현지 매장 직원을 대상으로 한 제품교육이다. 본사 매니저는 물론 매장 직원을 대상으로 제품 교육 및 한국식 화장법, 뷰티 트렌드 등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홍보함으로써 러시아 소비자와의 접점에서 ‘소통 스토리’를 제공한다. 송명규 대표는 “지금까지 연인원 1700여 명을 교육시켜 ‘K-뷰티 전도사’를 길러낸 게 보람”이라고 말했다.
#3 우연이 필연이 될 때
기자가 찾아간 날 송명규 대표는 1월 초 전세 수송기로 보낼 120톤 물량의 제품 점검에 무척 바빴다. 화장품의 무게를 고려하면 수송기에 가득 찰 제품 수량은 얼마나 될까? 40피트짜리 컨테이너 30여 개 분량이다.
러시아 소비자의 피부특성은 추운 기후 탓에 건조하고 각질이 많은 편. 때문에 보습은 기본이며 필링, 스크럽 제거, 안티에이징(주름 개선) 등 기능성 화장품이 유망하다는 게 송 대표의 조언이다. 마스크팩 성분도 스네일(snail), 콜라겐, 히알루론산 등이 인기라고 전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80여 개 브랜드를 러시아에 론칭한 송명규 대표는 현지 브랜드 빌드업에 능한 게 장점이다. 그는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 무엇을 발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없는 중소기업 제품이라도 △우수한 품질 및 안전성 △명확한 콘셉트 △눈에 띄는 디자인 △가성비 △신제품 등 5요소를 갖췄다면 언제든 상담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송명규 대표는 연구원 출신이면서 뛰어난 마케터다. 쥬리아에서 연구원 10년, 도매 전문점 영업 마케터로 10년을 보냈다. 연구원으로 개발부터 시작해 상품기획, 구매, 해외영업 등을 총괄하면서 안목을 높이고 실전 감각을 익혔다. 20년이 훌쩍 지나자 그는 과감히 창업했다. “부모와 자식도 평생 함께 못한다. 하물며 누구에게 평생을 책임지게 할 순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상담 업체의 열정을 듣다보면 오히려 제가 기운을 얻는다. 중소기업의 애환을 직접 겪었기에 오는 분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회사로 기억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송 대표의 말에서 ‘바이어가 존중하는 K-뷰티의 전도사’라는 위상을 갖추도록 노력하려는 열망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작년 6월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 방문을 수행한 KOTRA 권평오 사장은 2대 유통업체인 빼두루쉬카와 레뚜알(L’Etoile)의 K-뷰티 존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러시아에 한국산 화장품 존(zone)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디스트리뷰터가 ‘고센코리아’라는 중소유통업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귀국 후 권 사장은 해외진출 사례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고센코리아’를 거론하며, 작년 6000억불 수출 달성의 숨은 공로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고센코리아가 러시아 화장품 수출의 20% 이상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러시아와의 접점에서 기울인 송명규 대표의 노력과 헌신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운명’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일까! 송 대표는 '운명을 바꿔줄 사람'을 오늘도 고대하고 있다.
PS: 고센코리아는 100만불탑(‘16)→500만불탑(’17)→1000만불탑(‘18)을 수상했고 2019년 3000만불탑을 예상한다. 빠두루쉬카의 이리나는 현재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CNC NEWS =권태흥 기자 thk@cn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