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단체

대한화장품협회 이사회도 ‘제조원 표기’ 폐지 찬성

(사)화수협 주최 ’제조원 표기‘ 폐지 결의대회[下]...1만 2천여 브랜드사, 한 목소리로 화장품법 개정 촉구


#3 메디힐도 피해 막심, 브랜드 가치 훼손으로 K-뷰티 미래 암울


‘제조원 의무 표기’가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K-뷰티 브랜드 전체의 문제’라는 지적은 엘앤피코스메틱 차대익 대표의 발언에서 나왔다.


차 대표는 “그동안 정부, 국회 등 각계 요로에 ‘제조원 표기 폐지’를 제기해왔다. 프랑스·일본·미국 하면 떠오르는 게 유명 브랜드다. 그러다보니 ‘화장품을 잘 만드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전세계 소비자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30여 년 동안 화장품업계에 몸담고 있지만,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이거’라고 할만한 K-브랜드가 없다는 비하를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 제품은 차별성이 없어 고만고만하다는 비판을 받는 가장 큰 걸림돌이 ‘제조원 표기’다. 기상 용어에 우산효과(umbrella effect)라는 말이 있다. 대기 중에 떠도는 미립자가 햇빛을 막아 지구의 기온 상승을 방해하는 작용이다. 제조원 표기가 한국 화장품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를 훼손하면서 K-브랜드 가치 상승을 차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라고 비유했다.


요즘 중국 출장이 잦은 차대익 대표가 중국 바이어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K-코스메틱 어렵죠”라는 말이다. 그들은 K-뷰티가 힘든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단다. 하나는 한국 화장품은 반짝하고 금방 사라지다보니 정식 유통채널에서 유통하기 어렵다는 것. 유행을 타다보니 롱 셀러가 없다. 또 하나는 “그 제품이 그 제품”이라는 비아냥이다. 각사마다 ‘제조원 표기’가 똑같다보니 브랜드의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차 대표는 “대부분의 제조사가 중국에 진출, 중국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주다 보니 ‘Made in China’가 실질적으로 K-코스메틱과 차이가 없다. 어느 브랜드가 히트 제품을 중국 제조사에서 만들려고 가보니, 유명 한국 제조사 출신 연구원이 상담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중국 브랜드는 한국 연구진이 만든다는 점을 콘셉트로 한다”며 개탄했다.


“해외에 나가면 ‘Made in Korea’는 많은데 브랜드는 없다. K-뷰티 미래를 위해서라도 제조원 표기는 없어져야 한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도 ‘제조원 표기’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오늘 모인 (사)화수협 회원들이 ‘제조원 표기 폐지’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다”며 차 대표는 격려했다.



#4  5년여 개척한 중동시장 잃을 위기에 몰린 젊은 기업인의 눈물


피해사례 발표에는 창업 8년차 젊은 기업인도 동참했다. 코리안프랜즈 장준성 대표는 불과 한 달 전 중동바이어로부터 겪은 황당한 사례를 토로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샀다.


그는 “유통전문회사를 운영하며, 중동의 두바이·오만·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5년 여 동안 시장을 개척해왔다. 8개월 여 작업 끝에 화장품 2만개를 수출했고, 한 달만에 재주문 7만 개를 받았다. 그런데 아랍인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한국인을 시켜 ‘제조사 표기’를 보고 제조사에 직접 연락해 주문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아랍상인은 세계 4대 상인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무서운 상대다. 그들이 라벨을 보고 무려 4군데나 제조사로 치고 들어왔다”며 분개했다.


이어서 장 대표는 “유통사 입장에서는 제조사의 ‘상도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는 두 가지다. 첫째는 가격 노출이다. 첫 수출이어서 마진을 줄여 수출했기 때문에 그나마 바이어로부터 오해를 겨우 풀 수 있었다. 둘째는 신뢰 하락이다. 솔직히 그런 일을 당하면 사업하기 싫어진다.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사업할 수는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준성 대표는 “‘제조원 표기’가 다른 나라에는 없는데 우리나라만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세계 1, 2위라는 공룡 제조사가 성장한 게 그 이유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어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한국을 방문, 벌써부터 아랍 바이어로부터 한국이 이슈가 될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중국처럼 될까 싶어 잠이 안온다. 5년여 고생하면 뭘 하나? 중동시장도 망가질까 두렵다”며 한숨을 냈다.


참석자들은 피해사례를 들으며, “어떻게 화장품업체끼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참석자들 모두 수출 일선에서 겪었던 심각성을 다시한번 절감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피해자'라는 우울감을 토로한 참석자도 있었다.


‘제조원 표기 의무’라는 7자가 브랜드사의 숨통을 옥죄는 독소조항이 될 거라는 점은 화장품법이 개정된 2013년부터 일찌감치 예견됐다. 당시 화장품법 개정 상황에서 일부 제조사의 로비가 먹혔다는 증언도 나왔다.


1990년대 들어 ‘브랜드사는 마케팅, 제조사는 기술력’이라는 각자의 전문성으로 K-뷰티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를 통해 수많은 임직원들이 창업에 나서며 브랜드숍 전성기를 이끌었고, 본격적인 화장품 수출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중국 수출 봇물도 치열한 국내 경쟁의 산물이자 수많은 브랜드사의 플레이어가 중국을 누빈 결과다. 이제 중국 화장품시장은 글로벌 경쟁의 치열한 무대다. 로컬브랜드가 치고 올라오고 선진 글로벌 브랜드의 공세에 K-뷰티는 샌드위치 신세다.


울트라브이 권한진 대표의 “‘도미네이션 파워’로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어가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장품법의 ‘제조원 표기’ 조항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이제 일부 제조사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화장품협회도 지난 18일 열린 이사회에서 ‘제조원 표기 의무조항’ 폐지안을 놓고 투표한 결과 20개 이사 기업 중 찬성 14개사, 조건부 찬성 4개사, 반대 2개사로 의견을 모았다는 후문이다. 대한화장품협회 서경배 회장도 “‘제조원 표기 의무’ 조항을 이젠 개정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는 말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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