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안전성 제도 설명회 및 기업간담회가 10일 한국화재보험협회 강당에서 열렸다. 설명회는 ▲ 화장품 안전성 평가제도 도입 배경 및 추진 경과 ▲ 화장품 안전성평가 제도 및 가이드라인 ▲ 유럽 안전성 평가 제도 및 보고서 작성 사례 순으로 진행됐다.
화장품법 개정안 발의 후 처음 열린 설명회에서, 안전성 평가자 자격(안)으로 ① 관련 전공 학사+화장품 안전성 업무 종사 경력 ② 관련 전공+전문교육과정(비학위) 이수 ➂-1 전문교육과정(학위) 이수(규제과학 인재양성 특성화 대학원) ➂-2 전문교육과정(비학위과정): 별도 교육기관 지정 ④ 맞춤형화장품 조제관리사+화장품 안전성업무 종사 경력+전문교육과정(비학위) 이수 등 5가지 트랙이 제시됐다.

이어 열린 기업간담회에서는 안전성 평가 제도 시행 후 벌어질 현장을 미리 보는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일단 생산실적 10억원 이상, 신규 기능성화장품부터 2028년 시행 일정에 맞춰 법안이 발의된 상황에서 책판의 안전성 자료 작성 책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급체인 요소마다 디테일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아 모두 혼란스러워했다.
대한화장품협회 연재호 부회장은 “원료, 개발원료, 안전성 데이터 부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자리다. 우리나라는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여서 이미 도입한 유럽, 중국, 미국과 다른 상황이다. 허심탄회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라고 인사했다.
식약처 화장품정책과 고지훈 과장은 “법안 발의 후 처음 갖는 기업간담회다. 법안을 발의만 했지 방향성은 앞으로 시행규칙,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의견을 많이 내놓은 내용이 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점프업 K-코스메틱 협의체’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 지원이 필요한지, 현장의 어려움을 많이 얘기해달라”라고 당부했다.
이날 간담회는 착석 순서에 따라 개별기업 모두 의견을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사전 질의 또는 건의에서 나온 쟁점에 대한 기업의 설명과 걱정, 대응 등 ‘찐’한 우려가 전달됐다. 브랜드사(책임판매업자) 제조사, 원료사, 컨설팅사, 식약처, 대한화장품협회, 한국수출협회, 경기화장품협의회 등 모두 35명이 참석했다.
발언마다 기업들의 고충이 토로됐다. 먼저 안전성 데이터 제공 관련 △ 기준 △ 안전성 평가 수준 △ 가이드라인 제시 등에서 많은 기업이 헷갈려 했다. 아직 정해진 내용이 없어서다. 또 안전성 평가제도가 유럽형 or 중국형 아니면 새로운 한국형인지 궁금해 했다.
A사는 “자료 작성을 하려면 안전성 확보를 위한 원료뿐 아니라 부자재 스펙 등 정확한 정보 제공이 돼야 한다. ODM에서 정보를 받아야 하지만 업체 비밀자료라고 한다. 정보를 어느 범위까지, 제공사는 어디까지 의무 제공해야 하는지 가이드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B사는 “기본 데이터조차 준비가 덜 된 상황이다. MOS 산출을 위한 독성자료 선택이나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유럽 또는 중국 어느 기준을 따를지, 한국 기준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안전성 평가자의 경우 2년 학위 과정을 어떻게 할지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C 원료사는 “천연물은 다수 성분 원료로 안전성 자료를 갖춘다거나 효능 분석이 어렵다. 면제 또는 레인지(range) 등이 정해져야 원료사가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D사는 “발효물, 추출물의 경우 사실상 독성자료가 거의 없다. 실제 오랫동안 상당히 많이 사용되고 부작용이 없던 사례들을 모아 향후 가이드라인에서 면제 또는 간소화 할지 정해달라. K-뷰티가 추출물을 많이 쓰고 있어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사는 나라마다 안전성 평가 레벨이 다르다, 한국형은 어느 수준까지 할지 제시돼야 한다. 어느 정도 디테일하게 가져갈지에 대한 정책적 고려사항을 듣고 싶다고 했다.
해외기업 F사는 유럽자료를 그대로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반대로 한국 자료를 유럽에서 PIF로 사용할 수 있나, 또 영문을 그대로 보관해야 하는지, 한글 텍스트로 번역해야 하나, 요약본을 보관해야 할지, 번역은 어느 전문가가 담당해야 하는지 등을 질문했다.
책임판매업자와 ODM사 간 안전성 책임 소재, 자료 제공 범위 등에 관한 견해 차이도 드러났다.
F사는 책판과 ODM 사 간 안전성 자료를 놓고 책임과 의무의 구분이 가능한지, 또 유럽형은 평가사 결론에 규제 당국이 비관여하는 데 비해 중국형은 국가 주도여서 과연 식약처의 설계는 어디를 따를지에 대해 질문했다.
G 컨설팅사는 “유럽은 완제품에 대해 안전성 평가를 요청한다. 안전성 자료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노하우가 있는데 이것을 가이드에서 의무로 할지 궁금하다. 국내 안전성평가자(accessor) 자료가 해외에서 받아 들여질지, 수출국마다 다른데 작성 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라고 말했다.
식약처의 화장품 안전성 평가제도 시행 일정이 촉박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H사는 “당장 3~5년 준비해 2031년 전면 시행한다는 데 어떤 목적으로 강제 시행하려는지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다. 또 안전성 평가 후 문제가 발견된다면 어떻게 처리할지 등 식약처의 정책 방향을 설명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안전성 평가 관련 비용 부담에 대한 책판들의 반발도 나왔다. 자료나 전문성, 역량이 부족한 책판이 품목당 수백, 수천만 원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데 대한 불만이다. 또 유럽, 중국은 자국산업 보호 측면에서 제도 시행을 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K화장품협의회는 “전국의 모든 지방 협·단체 수많은 기업들 사이에서 걱정이 많다. 영세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제도다. 책임과 자료를 다 가지고 있는 ODM이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비판했다.
H협회도 “자료를 작성, 보관해야 하는 책판과 자료 제공을 해야 하는 원료, 제조사 간 책임이 균등해야 한다. 공급체인에서 책임을 지울 때 준수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런 고려사항이 없다. 둘째 해외기업들은 CPNP, NMPA 모두 자국산업 보호 측면이 법률 제정에 반영돼 있다. 우리는 그런 부분이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H사는 “원료사로서 원료 제공 시 안전성 보고서를 요청받는다. 천연물, 추출물, 발효물의 경우 독성 데이터가 거의 없다. 때문에 자체 독성 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대체시험법으로 하는 데, 흡입·반복 독성 시험은 어렵다. 실험 시 원료 당 1500~2천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부담이 크다. 부담을 나눌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브랜드 I사는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려면 제도 자체는 공감한다. 다만 브랜드사는 마케팅, 시장조사, 시장개척 외에 어떤 안전성 평가 데이터를 만들어낼 아무것도 없다. 유럽에서 CPNP 받으려면 품목당 4~500만원이 든다. 여기에 기능성 제품이라면 품목 당 3~6천만원 임상비용을 내야 한다. 그렇다 보니 품목당 1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 모든 것을 10명 미만 3만여 책판이 책임져야 한다. 이러면 대부분의 책임판매업자는 망한다. 그 어떤 스타트업도 들어올 수 없는 구조가 된다. 게다가 이렇게 만든 안전성 자료를 유럽, 중국에서 인정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때문에 안전성 의무와 책임을 업계 전반으로 가져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해외기업 J사는 “유럽은 ‘76년에 시작해 90년대 후반에 규정을 만들고 2013년에야 시행할 정도로 오랜 기간 데이터를 쌓고 준비했다. 글로벌 본사에서 한국에서 현재의 자료를 인정해줄지 궁금해 한다. 유럽, 한국 양쪽으로 등록하려면 각각 별도 비용을 내야 하는 부담도 있다. 2년 후 신규 기능성 화장품부터 적용한다는데 기능성 등록 자료와 실제 안전성 자료 차이가 뭔지, 이에 대해 해외 규제당국과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식약처와 논의했다는 점프업 협의체가 산업 생태계의 문제점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K사는 “해설서나 가이드라인을 봤을 때 ‘이렇게 많은 자료를 준비해야 하나’, 모든 회사들이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L사는 “한국형 안전성 평가 비용이 CPNP 등록 비용보다 2, 3배 든다면 창업하기 어렵다.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외 안전성 평가자 인정 문제, 해외 원료나 안전성 자료 등이 양식이 다른데 이것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중소제조사 M사는 “ODM사도 연구하고 설비를 갖추는 등 부담이 있다. 다만 국내 제조사도 사이즈가 크게 다르다. 해외 전시회에 가면 대형 ODM사들은 ”이런 제품을 만들었고 이렇게 기술력이 있다, 너희도 만들어주겠다“라고 영업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강소기업들의 영업력이 저조해질 수밖에 없다. 점프업 협의체에서 실행안을 논의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매출 규모 10억 미만의 업체들인가?”라고 반문했다.
화장품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안전성 평가 제도 도입’ 관련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만으로도 산업 현장의 카오스는 분명해 보인다.
“ODM이 다 만들어주고 R&D 하는데 브랜드사가 왜 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자칫 제도 방향성이 실종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나왔다. ‘점프업 K-코스메틱 협의체’와 중소기업 간 인식 차이도 컸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ODM사가 안전성 책임에선 한 발 물러선 법규로 인해 책판과 중소 제조사의 걱정은 산더미처럼 쌓였음이 확인된다.
현재 중소기업 수출품목 1위 화장품은 생산금액 10억 미만 중소기업이 94%를 차지하며, 화장품 수출의 71%를 감당한다.
고지훈 화장품정책과장은 “화장품법 상 책임을 책판이 지고 있어 안전관리도 책판이 져야 한다”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책판이 책임을 다 해내라는 의미가 아니라 궁극적인 제품 책임을 책판이 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원료사와 제조사 책임도 있을 수밖에 없다. ODM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처방, 안전성 평가 자료를 작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부분을 논의하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기업간담회는 “모든 책임은 책판이 지는 것 빼곤 어느 하나 결정된 게 없이 진행된다”는 점만 분명하게 확인됐다. ‘책임 독박’과 ‘현장 혼란’을 우려하는 중소기업 목소리는 어느 하나 반영되거나 반영될 가능성은 미지수(?)로 남겨졌다. ‘제조사 표기’ 자율 표기도 제기됐으나 이에 대한 식약처의 반응은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