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성과’는 연구·개발 고유의 결과보다 △마케팅에 명확한 콘셉트 전달 △마케팅과의 동일한 고민이 핵심이다. 복원한 ‘납작콩’으로 제품을 개발한 R&D 부서가 ’잭과 콩나무‘ 콘셉트를 제안했고 마케팅팀은 이 아이디어를 광고의 메타포(metaphor)에 적용했다. 콩을 심어 급격히 성장하는 콩나무의 엄청난 탄력과 힘을 광고 배경에 표현해 희귀 원료의 효능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화장품 R&D가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사례다.”
11월 30일 열린 ‘2018 화장품산업 정책포럼’과 ‘한국화장품미용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첫 번째 연자로 나선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소 김영소 상무가 던진 화두다. 연구원으로 아모레퍼시픽에 입사 후 R&D와 마케팅을 넘다든 그의 경험담은 청중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1. 멸종된 재래종 복원한 R&D, 화장품 원료로써 ‘납작콩’ 재조명
이날 ‘화장품 R&D 연구개발 동향’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김영소 상무는 화장품 R&D가 마케팅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모레퍼시픽의 사례를 소개했다. 먼저 그는 아모레퍼시픽이 집중 연구하고 있는 ‘콩·인삼·녹차·동백’ 4대 원료 중 ‘콩’의 R&D에서 비롯된 성과를 공유했다.
김영소 상무는 “콩은 너무 흔한 원료다. 반면 원료 R&D는 흔한 원료라도 어떻게 고객 가치를 찾아내고 이끌어내는지가 핵심이다”라면서 “콩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를 수행했고 희귀 재래종 복원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들이 원료 R&D를 위해 희귀 동식물 찾기에 초점을 맞출 때 아모레퍼시픽은 ‘콩’의 재래종에 눈을 돌렸다.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예전부터 사용해온 원료에 있다는 기업 신념 때문이다. 지금은 회귀된 140여 종의 콩에 대한 복원·분석을 시작했고, ‘효능’에 포커스를 맞춘 끝에 희귀종 ‘납작콩’ 확보에 성공했다.
납작콩은 멸종된 종자다. 구수한 맛의 단백질이나 아미노산보다 쓴맛을 유발하는 ‘카테킨(Catechin)’류의 성분이 더 많아서다. 식품으로써의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도태된 것.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납작콩에 다량 함유된 ‘카테킨’류에 집중했다.
화장품의 항산화 효능이 대부분 ‘카테킨’류에서 발현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화장품 원료로써의 납작콩 가치가 격상됐다. 아모레퍼시픽은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납작콩의 양을 확보하기 위해 수년간 파주 농장에서 재배 중이다.
#2. R&D-마케팅 연결의 시사점
납작콩 원료를 기반으로 개발한 제품은 프리메라 ‘와일드 씨드 퍼밍 세럼’이었다. 이 세럼의 론칭을 앞두고 제품 콘셉트를 위한 공동 아이디어 회의가 열렸다. “이때 원료 개발부터 참여해 납작콩의 효능을 인지하고 있었던 R&D팀은 ‘잭과 콩나무’를 콘셉트로 제안했다”고 김영소 상무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즉, R&D는 연구·개발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마케팅이 전개되기 전 R&D가 제품 개발 포인트를 마케팅에 명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마케팅과 동일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제품의 광고 제작은 ‘순풍에 돛단 듯’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땅에 심으면 거침없이 자라는 콩나무의 엄청난 ‘탄력’과 무섭게 뻗어 오르는 ‘힘’을 광고의 메타포로 적용했다. 프리메라 ‘와일드 씨드 퍼밍 세럼’의 성공적인 론칭에 R&D가 기반이 된 케이스다.
아모레퍼시픽의 R&D 활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홍보 수단으로 이어졌다. 재래종의 복원은 충분히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는 아모레퍼시픽의 판단이 한몫했다. 아침방송이나 생생정보통 등 정보성 방송에 연구원이 직접 나서 납작콩 복원 스토리를 소개했다. 또 토종 납작콩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오히려 방송에서의 직접적인 제품 소개는 지양했다.
특히, 고객이 직접 ‘R&D’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전개한 온·오프라인 이벤트도 프리메라 브랜드 및 신제품 홍보에 주효했다. 파워블로거와 연구원이 함께 납작콩으로 원료를 직접 만들고, 제품 체험의 시간을 마련했다. 블로그에 게재된 다수의 포스팅으로 많은 고객에게 ‘와일드 씨드 퍼밍 세럼’의 효능을 전파할 수 있었다.
또 프리메라의 주 고객층이 20대 초반의 여성임을 인지하고 타깃층을 겨냥한 ‘납작콩 포켓몬고’ 게임을 개발을 통한 디지털마케팅까지 확대했다. 당시 유행한 게임 포켓몬고를 벤치마킹 한 것. 게임을 즐기면서 제품의 효능과 소재 등을 맞추면 샘플 쿠폰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 해당 제품을 고객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납작콩의 개발부터 실제 마캐팅이 펼쳐지는 과정을 설명한 김영소 상무는 “R&D와 마케팅은 분리돼있지 않다. R&D가 마케팅까지 연결되어야 제품의 성공 가능성이 더 올라간다”고 거듭 강조했다.
20분간의 생동감 넘치는 강연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김영소 상무는 ‘넥스트 R&D’에 대한 사고를 주문했다. 그는 “화두는 ‘맞춤형화장품’이 될 것이다. 아모레퍼시픽도 기반 연구를 펼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맞춤형화장품’을 제도권에 두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그만큼 관심이 뜨거운 분야”라고 확신했다. 이어 “색감, 효능, 3D 마스크 등 맞춤형 화장품이 R&D의 넥스트 스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영소 상무는 “이 자리에 화장품을 전공으로 삼은 학생이 있다면 포뮬레이션만이 연구원의 길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며 “이제부터 ‘넥스트’에 대한 다양한 연구 테마를 잡아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한편, ‘2018 화장품산업 정책포럼’과 ‘한국화장품미용학회 추계 학술대회’가 11월 30일 성신여자대학교 미아 운정그린캠퍼스 중강당에서 개최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화장품미용학회 공동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국내 화장품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 화장품 산업의 생태계 조성 △해외시장에서 낮은 국내 브랜드 인지도 △대외환경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 고조 △소비자의 요구증대에 따른 안전관리 강화 △수출저해 국내외 규제요인 등의 극복을 위한 전략 모색의 자리였다.
CNCNEWS=차성준 기자 csj@cn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