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 중국 대리상 주의보가 발령됐다. 작년 마스크팩 중국 수출 1위 업체인 JM솔루션이 거액의 대금이 중국 거래처에 물렸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 또 매출이 반토막 나는 업체가 줄을 잇고 인원 정리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야말로 중국 대리상을 믿고 대형 공급계약을 맺은 업체들이 줄줄이 위기에 몰렸다는 소식이다.
리더스코스메틱은 3월 15일 공시를 통해 2018년 매출액 1392억원, 영업이익 –13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0.5% 감소, 영업이익은 무려 5224% 마이너스다. 이에 대한 공식 이유는 △매출 채권 소송에 따른 대손상각비 설정(102억원) △판매수수료 증가(33억원→106억원) 등 두 가지다.
매출채권이란 외상매출금과 받을어음이 해당되며, 한마디로 물건을 판매하고 받는 신용채권이다. 소송이 붙었다는 의미는 대금을 떼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판매수수료가 3배 이상 증가한 것은 부실판매 제품 처리와 관련이 있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리더스코스메틱이 중국 대리상에게 넘긴 제품 판매 부진으로 대규모 손실분을 회계에 반영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작년 3분기부터 홈쇼핑에 전력을 쏟고 있는 형편. 중국 매출 비중이 종전 60%→13%(4분기)까지 감소했다.
앞서 토니모리는 2월 28일 공시를 통해 중국 DMX와의 871억원에 달하는 물품공급 및 유통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토니모리는 계약조건인 연간 최소금액의 80%를 달성하지 못해 계약조건 불이행에 따른 계약해지라고 설명했다.
토니모리는 애초 2017년 10월 19일 DMX와 계약기간 5년 총액 4030억원의 물품 공급 및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 후 2018년 8월 계약기간 5년 총액 871억원의 계약으로 수정됐으며, 이번 공시로 이마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계약해지 원인은 중국 측 대리상의 판매실적이 극도로 부진하자 더 이상 끌어봐야 좋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업계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히트작으로 알려진 V마스크도 최근 대리상이 잠적해 중국 물량이 대거 물렸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업체와 대형 계약을 맺어놓고, 매출이 부진하자 재고를 감당하지 못해, 소식을 끊었다고 한다. 문제는 재고가 덤핑으로 시장에 풀릴 경우 브랜드 이미지 하락은 물론, 시장 가격을 무너뜨려 한국 마스크팩 전체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고 전했다.
문제는 한 업체만의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소비 둔화세가 뚜렷해지고 로컬브랜드가 치고 올라오면서, 마스크팩 유통가격도 30% 이상 떨어진데다 물량마저 감소하고 있다는 것. 마스크팩은 손쉽게 시장 진입이 가능하고 물량공세로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반면 대리상에 의해 좌우되다 보니, 미수 발생 시 수습이 어렵다는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 유통채널은 제조사→총대리상→1·2급 대리상→대리상(经销商)→소매유통 마트·슈퍼의 단계를 거치며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이런 유통구조 때문에 중국 소비자가는 △한국기업의 상품원가 △판매·유통마진 두 가지로 나뉘며 중간단계마다 유통마진을 줘야하기 때문에 원가비율이 한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에서 공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물량에 목매달게 되고 한국업체가 가져가는 마스크팩 마진이 0.5%, 1% 떼기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왜곡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대리상들이 중간에서 연락을 끊으면 대금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 연결고리가 사라짐으로써 한국 업체가 낭패를 당하기 쉬운 구조다. 예전의 선수금과 인도시 완납 조건은 사라진 지 오래다. 외려 총판권을 요구하거나 지분을 주지 않으면 거래조차 성사되지 않으니 한국 업체들이 대리상에 목매다는 구조로 변질됐다. 대리상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리다보니, 대금 미수 상태가 발생하면 한국 업체는 꼼짝없이 위기에 몰리는 형편이다.
제이준코스메틱의 지분 관계를 살펴보면 한국 제이준의 중국 판매권은 제이준차이나가 100%를 가지고 있다. 만약 제이준차이나가 손을 떼는 경우가 발생하면 제이준코스메틱은 위험하다는 게 회계 전문가의 진단이다.
중국 대리상이 한국 업체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형국은 소비둔화세가 심화될수록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국은행 북경사무소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춘절 연휴기간(1월)의 소비증가폭은 크게 축소됐다. 소매 및 외식업체 매출 증가율(16년 11.2% → 17년 11.4% → 18년 10.2% → 19년 8.5%), 승용차 판매량(7월–5.3% → 8월–4.6% → 9월–12.0% → 10월 –13.0% → 11월 –16.1% → 12월 –15.8% → 19.1월 –17.7%로 7개월 연속 감소세), 관광수입은 증가했으나 전년에 비해 증가폭은 크게 축소되는 등 소비 둔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소비둔화세에 따라 한국 업체에겐 중국 대리상이 계륵이 됐다. 만일의 경우를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