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또는→및’ 때문에...‘제조원 표기’ 스트레스 호소

[취재파일]수출기업들 라벨 찍을 때마다 ‘제조원 표기’에 스트레스
“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일을 K-뷰티가 해야 하나?”

화장품 수출기업 사이에서 ‘제조원 표기 포비아’를 호소하는 기업인이 많다. 단톡방과 페이스북에서는 “제조원 표기 문제 어떻게 되고 있나요?”라며 궁금증을 묻는 글이 이따끔 올라온다.


A 대표는 “신제품을 수출하려는 데 ‘제조원 표기’ 해야 하나요?”라며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발의된 화장품법 일부 개정안이 20대 국회가 폐회되며 자동 폐기됐다”, “제조원 표기를 안해도 되는 게 아니었나? 고쳐진 거로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해결 안됐나? 제조원 표기 규제를 해결한다는 발표도 있었지 않나? 그렇다면 왜 안되는 지 추가 정보를 알려달라”는 등의 댓글이 잇달아 달렸다.


화장품 기업에게 라벨을 인쇄할 때마다 ‘제조원 표기’는 거의 스트레스다. 한 번씩 당한 쓴 경험 때문이다. “열심히 만들어 해외에 갖고 들어가면 뭘 하나? 계약을 하면 초도 물량 외 추가 주문이 안온다. 왜 그런가 이상하다 싶으면, 비슷한 제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얘기들이다.


심지어 전시장에서 만난 바이어에게 샘플을 줬는데, 제품을 출시하니 이미 비슷한 제품이 중국에서 팔리고 있다는 기막힌 사연도 있다. B대표는 국내 히트 제품을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가 같은 제조사가 중국기업을 통해 시장에 내놓았다는 말을 듣고 포기한 사례도 있다. 그는 “물경 수십 억대 판매를 올릴 수 있었는데, 어떻게 제조사가 그럴 수 있냐”고 속을 삭인다.


C대표는 “중국시장에 신제품 내놓자마자 카피캣이 나오니 이를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냐? 분통이 터진다”라며 울분을 토한다. 이렇듯 화장품법의 ‘용기 등의 기재사항’의 제조원 표기 의무 조항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수출기업이 늘고 있다.



사실 화장품법은 2000년에 처음 제정되고 나서 지금까지 28차례 일부 또는 전부 개정됐다. 처음에는 ‘용기 등의 기재사항’에 “2. 제조업자 또는 수입자의 상호 및 주소”라고 명기됐었다. 그런데 2012년 화장품법 전부 개정 때 “제조업자 및 제조판매업자의 상호 및 주소”라고 바뀌었다.


당시 상임위, 본회의 과정의 회의록을 전부 살펴봐도 이에 대한 논의나 설명은 없다. 개정방향에 대한 설명만 있고, 자구의 첨삭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조문 확정 마지막 순간에 일부 제조사의 ‘또는’ → ‘ 및’으로 자구를 바꾸는 로비가 있었다는 게 협회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다. 일부 기업의 로비가 먹혔다는 것은 문제 소지가 될 수 있다.


‘제조원 표기’ 관련 브랜드사들의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여러 경로를 통해 수출 애로 사항으로 삭제가 건의됐고, 마침내 작년 12월 ‘(K-뷰티) 미래 화장품산업 육성 방안’의 규제혁신 1호로 ‘표기의무 삭제’를 추진한다는 정부의 답변도 이끌었다.


9월 정기국회 회기 중에 ‘화장품법 개정’이 이뤄지길 많은 기업들이 기대하고 있다. 심각한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화장품 업계가 수출에서만큼은 K-뷰티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조원 표기’ 삭제가 이뤄져야 한다.


마침 특허청은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을 통해 해외에서의 지식재산권 보호 노력을 기울이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라벨에 기재된 제조원을 통해, ODM 생산으로 자사브랜드화하는 해외 기업들이 있는 한 K-뷰티의 지식재산권 보호는 미미하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법은 화장품의 품질 안전, 소비자 피해 등의 모든 책임을 책임판매업자가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조사명이 소비자의 알 권리라는 주장은 명분이 없다. 사실 화장품을 고를 때 브랜드를 보고 사지, 제조사를 보고 사는 소비자는 없다”며 “브랜드와 제조사의 협업으로 K-뷰티의 파이를 키우자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화장품협회를 비롯한 대다수가 ‘제조사 표기 삭제’에 찬성한다면 이를 들어주는 게 순리다”라고 강조했다.


과연 올해 정기국회 때 브랜드사들의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을지, 식약처의 ‘(K-뷰티) 미래 화장품산업 육성 방안’ 실천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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