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밤 12시가 되기 전에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집이 먼 조윤희는 10시쯤에 이미 퇴근 하였고, 신대리와 박성준만 변함없이 늦은 밤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이미 프린트가 된 하나의 사업계획서를 신대리가 마지막 검토를 하는 동안 또 다른 하나의 사업계획서가 더디게 인쇄되고 있었다. “대리님, 우리도 레이저 프린터 하나 신청하죠? 다른 팀이 쓰다 넘긴 이 놈의 잉크젯은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해서 일 못하겠어요.” 인쇄를 기다리는 것이 마냥 답답하다는 듯이 박성준의 푸념이 또 터졌지만, 신대리는 별 다른 대꾸 없이 마지막 한 장까지 검토를 마무리했다. “첫 번째 안은 오타가 몇 군데 있는 것만 빼면 별 문제 없겠는데, 일단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다시 인쇄하지 말고 이걸로 내일 보고할게. 근데 둘째 안은 아직 인쇄 안됐어?” “그러게 인쇄가 너무 느려서 안되겠다니까요. 그래도 이제 두 장 남았어요.” “그래? 그럼 인쇄된 것부터 먼저 볼게. 이리 줘봐.” 박성준은 프린터에 수북이 쌓여있는 두 번째 계획서를 조심스럽게 꺼내, 책상에서 두 세 번 탁탁 쳐서 가지런하게 정리한 후 신대리에게 건넸다. 둘째 안은 신대리가 직접 작성한 내용을 박성준이 교정을 보
“윤희씨, 이 사업계획서를 다 번역하는데, 얼마나 걸리겠어?” 문득 신대리는 조윤희를 바라보며 다급히 말을 건냈다. “글쎄요, 이 정도면 제게 하루는 더 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흠….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일단 저녁 식사 후에 우리 야근 좀 더 하자. 오늘 밤에 어떤 일이 있어도 유통 전략에 대해서 여러 경우의 수를 만들고 각각의 경우에 맞는 4P전략을 모두 수립해보는 거야.” “하지만 대리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데요? 브랜드숍, 직영영업소, 대형 전문점 직거래 등에 따라 전략을 다르게 조합하면 이건 사업계획서 하나 만드는 게 아닙니다. 팀장님도 책임 못 지겠다며, 도망가버린 판국에….” 아니나 다를까, 점점 투덜이로 변해가고 있는 박성준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단 두 가지 경우만 하자. 첫째는 지금 우리 주장대로 브랜드숍 유통으로, 두 번째는 현 영업조직에서 브랜드만 하나 더 얹어서 판매할 경우로.” 신대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각각의 경우, 4P의 실행전략과 5개년 예상 매출과 손익을 정리하는 거야. 그걸 가지고 내가 내일 아침 최상무님을 만나 뵙고, 현 상황을 설명 드리고 나서 최상무님의 결정을 먼저 받아올 테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일은 앞서 걱정했던 것 보다 의외로 쉽게 풀려갔다. 이런 식의 외국 회사에 Business Proposal을 해 본 경험이 없던 신대리는 아직 컨셉 조차 정립되지 못한 M&C의 사업계획을 어떻게 작성할까 고민이 많았지만, 경험이 많은 송팀장이 이번처럼 초기에는 구체적인 컨셉이 없어도 전반적인 사업방향에 대해서만 다루면 된다고 가이드를 주자 일이 일사천리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사실 사업방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이를 좀 더 구체적이고 세련되게 정리한 후, 향후 5개년 매출계획과 손익 정도만 추가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5년간의 매출을 예측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M&C의 브랜드숍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매출을 전망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신대리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일단 직영 브랜드숍을 5개 정도 오픈하고 이를 플래그쉽 스토어(Flagship Store)로 활용하여 프랜차이즈 매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럴 경우 회사의 영업부도 하나 더 새로 조직해서 별도의 사업부처럼 이원화해야 하는 한편, 새로 영업부 직원들도 모두 뽑아야 한다는 가장 큰 문제가 남
잉글우드랩 데이빗 정 회장이 2015년 설립한 파머시(Farmacy) 브랜드의 글로벌 확장 전략과 K-뷰티 발전을 위해인디(indie) 뷰티 브랜드와의 협업 계획을 밝혔다. 4월 23일 코스메카코리아에 잉글우드랩의 매각 공시 후 기자와 만난 데이빗 정 회장은 “천성적으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개척정신이 내게 새로운 도전을 일깨워준 일주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주 내내 데이빗 정 회장은 잉글우드랩의 미래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1년여 동안 미국 글로벌 브랜드의 지인들은 오딧(audit) 통과에 따른 오더 주문과,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잉글우드랩을 전진기지로 하는 방안을 놓고 데이빗 정 회장과 지속적인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이에 부응하고자 지난해 미국과 한국의 공장 신축 및 증설, 일본콜마와의 협업 등 시스템 구축을 마치고 올해 본격 도약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코스메카코리아와의 매각 협상이 불거졌고, OEM/ODM 전문기업의 역량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고 그는 전했다. 매각 결심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개척정신(frontier spirit)'이 새삼 그를 꿈틀거리게 했다고 한다. 12세 때 어머니를 따라 기회의 땅인 미국에
손잡이도 없는 외발 전동휠을 타고 유유히 강연장에 들어오는 한 사람, 무선 마이크를 들고 미국 최대의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비서인 알렉사와 대화하는 그는 스타트업의 대표도 IT 기업의 엔지니어도 아닌 정통 마케팅 30년 경륜의 코웨이 이해선 대표다.이 대표가 지난 1월 미국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던진 한마디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세상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고 연구하더라도 산업의 현장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시장의 변화를 놓칠 수밖에 없다, 산업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숨 가쁜 혁신과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다”고 이 대표는 직언했다. 즉, 업을 벗어나면 변화할 시간도 무엇이 변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다.“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던지 이 모든 것은 변화한다”라는 전제는 삶을 넘어서 산업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명령 체계는 클릭(Click)에서 접촉(Touch)으로 이제는 음성(Voice)을 활용한 소리가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굴지의 그룹
그녀가 하는 사업이 바로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 또는 제품들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 수출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거나, 브랜드 라이센싱 계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회사와 회사를 연결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계약이 성사되어 수 년이 지나 종료될 때까지 불어가 능통하지 않는 아시아권 회사들을 위하여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창구역할도 하며 업무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더운 날씨는 상관없다는 듯이 베이지색 여름정장에 투명하게 비치는 넓은 스카프를 목부터 어깨까지 흘러내리게 조화시킨 파리에서 금방 넘어온 이 멋진 파리지엔느는 마치 내가 파리의 한 복판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불어가 튀어나올 듯 하였지만, 그녀는 매우 자연스럽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말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파리에 있는 쟝의 소개로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마침 한국에 올 일이 있었지만, 다른 일정 상 방문하긴 힘들었는데, 쟝의 간곡한 부탁도 있어서 일정 하나를 빼고 급히 오느라 미처 연락도 못 드리고 무작정 오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녀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어울리는 맑고 또렷한 목소리는 지쳐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한 순간 생
송팀장을 포함한 사업개발팀 멤버들은 조사를 직접 진행한 D사의 엄대리와 장시간 회의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M&C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화장품이라는 막연한 이미지와 선입관은 코어 타겟이 올드하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제품개발 시 젊은 느낌의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M&C가 다른 두 개의 브랜드보다 인지도를 포함한 다른 항목에서는 월등한 지표를 나타냈기 때문에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송팀장은 바로 M&C에 대해서 경영진에 보고를 하였으며, 이에 대해서 다른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소비자 조사 결과도 좋았지만, 현재 국내에 형성된 성공적인 패션 이미지에 대해 대부분이 만족스러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과연 어떻게 이 브랜드를 라이센싱해 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송팀장은 수소문을 통하여 프랑스 파리에 있는 M&C 본사의 해외 라이센스 담당자를 찾아, 브랜드 라이센싱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몇 주가 되어서야 온 대답은 한마디로 “No”였
다음 날 한 시간 단위로 두 곳의 리서치 회사의 담당자들이 사업개발팀을 방문하자, 신대리는 마치 그가 직접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 리서치의 취지를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상으로 이번 리서치의 주요 배경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이번 리서치는 화장품과 어울리는 외국 유명 브랜드를 선택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별한 세 브랜드는 이미 국내 젊은 여성들에게 꽤 알려진 브랜드들이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조사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대리는 PPT의 최종 슬라이드로 화면을 옮겼다. 화면에 이번 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굵은 글씨체로 크게 강조되어 나타나자, 그는 힘찬 목소리로 더욱 강조하며 화면의 글을 또박또박 읽어 나갔다. “1. 각각의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2. 브랜드 인지도는 각각 어느 정도인가?3. 브랜드별 정확한 코어 타겟은 누구인가?4. 화장품 브랜드로서의 적합성은 어떠한가?5. 결론적으로 최종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가?” 리서치의 취지와 목적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그는 매우 다급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저희가 급한 관계로 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