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51. 사업개발팀(8)

“윤희씨, 이 사업계획서를 다 번역하는데, 얼마나 걸리겠어?”

문득 신대리는 조윤희를 바라보며 다급히 말을 건냈다.

“글쎄요, 이 정도면 제게 하루는 더 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흠….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일단 저녁 식사 후에 우리 야근 좀 더 하자. 오늘 밤에 어떤 일이 있어도 유통 전략에 대해서 여러 경우의 수를 만들고 각각의 경우에 맞는 4P전략을 모두 수립해보는 거야.”

“하지만 대리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데요? 브랜드숍, 직영영업소, 대형 전문점 직거래 등에 따라 전략을 다르게 조합하면 이건 사업계획서 하나 만드는 게 아닙니다. 팀장님도 책임 못 지겠다며, 도망가버린 판국에….”

아니나 다를까, 점점 투덜이로 변해가고 있는 박성준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단 두 가지 경우만 하자. 첫째는 지금 우리 주장대로 브랜드숍 유통으로, 두 번째는 현 영업조직에서 브랜드만 하나 더 얹어서 판매할 경우로.”

신대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각각의 경우, 4P의 실행전략과 5개년 예상 매출과 손익을 정리하는 거야. 그걸 가지고 내가 내일 아침 최상무님을 만나 뵙고, 현 상황을 설명 드리고 나서 최상무님의 결정을 먼저 받아올 테니, 일단 그걸 먼저 이메일을 보내고, CFO와 사장님 결재는 나중에 하자고. 현재 최상무님이 영업과 마케팅 총수이시니까, 일단 그 분 결재만이라도 반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 만약 뭔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모두 책임질게. 어때?”

“하지만 대리님, 팀장님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을….”

“성준아~! 이건 우리가 벌인 일이잖아. 우리가 어렵게 만든 일이라고. 이렇게 쉽게 물러날 수는 없어. 그러니 오늘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우리 같이 한번 만들어보자. 응?” 
박성준의 볼멘 소리를 애써 끊으며, 신대리는 그를 강하게 설득하였다. 사실 그도 그 밖에 별다른 수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인지, 더 이상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네, 그러죠. 근데 이거 요즘 오랜만에 매일 야근하니, 옛날 생각도 나고, 이제야 비로소 일 좀 하는 맛도 좀 드는데요?”

처음엔 좀 퉁퉁거리는 것 같아도 결국 자신의 의견에 항상 성실히 좇아와 주는 박성준이 신대리에게 있어서 언제나 사랑스럽고 고마운 존재였다.

지금까지 마케팅에서 신제품이나 브랜드를 런칭할 때는 항상 제품의 컨셉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유통은 항상 정해져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발상이거나, 유통은 무엇이든 상관없고 제품만 좋으면 무조건 잘 팔릴 것이라는 80~90년대에나 맞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었다. 지금은 화장품도 방문판매와 화장품전문점 및 백화점이라는 단순 구조에서 벗어나 대형 할인마트, 홈쇼핑 등으로 점차 유통 다각화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화장품전문점으로 대표되고 있는 시판시장에서의 브랜드숍의 변화는 이전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면 동일한 제품을 이 모든 유통에 같이 팔게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각각의 유통은 분명히 다른 판매 조건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제품을 모든 곳에 판매할 경우 유통간의 상이한 판매조건 때문에 심한 갈등이 발생하여, 결국엔 제품이 설 자리를 잃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M&C가 브랜드숍으로 가게 된다면, 기초, 색조, 바디 등의 화장품의 전 분야에 해당하는 종합적인 제품 구성과 고급 이미지를 통한 고가의 정찰 판매가 가능하겠지만, 기존 조직에 브랜드만 추가할 경우에는 다른 브랜드와 겹치지 않는 차별화되고 한정된 제품 구성이면 충분하며 이미 할인판매를 하는 다른 브랜드처럼 할인판매가 이루어질 것은 기정 사실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면 M&C의 브랜드 생명도 짧아질 것이고 애써 비싼 돈을 들여 브랜드를 도입할 이유도 없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경영진은 브랜드가 결정될 때까지 아직도 시간이 있다며 유통에 대한 결정을 보류하고 있었다.

또한 마케팅부는 지금도 제품의 컨셉과 유통방향을 어떻게 믹스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마케팅과 영업의 이분법적인 논리로 시장상황에 맞든 안 맞든 상관없이 제품만 출시하고 광고만 한 후, 유통은 내일이 아니니까 이제부터 영업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신대리에겐 어느새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굳은 신념 같은 것이 자리잡게 되어서, 항상 4P Mix의 시작을 제품이 아닌 유통, 즉 시장부터라는 시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시장이 다르다면 당연히 제품과 전략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마케팅 베이직인 것이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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