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24. 시장조사 업무(11)

그 해 4월 최초로 개설된 중부영업소의 담당구역은 화장품1번지라 하는 명동을 포함한 중구지역으로써, 화장품시장을 주도하는 치열한 전장과도 같은 핵심상권인 곳이다. 회사는 이런 중요 상권에서 특히 열세를 면치 못해왔기 때문에, 영업부에서 가장 능력 있는 강대리가 영업소장의 중임을 맡게 되었다.

강대리는 신대리와 같은 대학 경역학과 동창이었으며, 신대리가 영업지원부 시절에 회사의 문제점에 대해 항상 함께 고민했던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신대리가 마케팅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그는 언제라도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회사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둘은 그리 친하지 않았다. 신대리는 학과 활동 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 반면, 과 대표였던 강대리는 학과 활동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강대리는 졸업 후 바로 회사에 입사했지만, 신대리는 대학원을 준비하다가 6개월 늦게 다른 회사에 갔다가 이곳으로 입사하게 되어, 뒤늦게 회사에서 만나 친하게 된 경우였다.

강소장은 확실히 기대에 부응하였다. 특히 가격이 난립되어 있는 명동지역의 대형상권을 확실히 침투한 결과 첫 달에 매출 6천만원을 달성하였다. 그 결과 그는 과장으로 특진되었고, 회사가 직영영업소를 증대시키게 된 촉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현재 회사는 10개의 직영영업소를 통해 한 달에 1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이루고 있어, 직영영업소 한 개점에서 평균 1억원이라는 큰 성과를 내고 있었다.

신대리는 여느 때와 변함없이 10월 정기 시장조사 보고서 작성을 완료하였다. 그 동안 단순히 경쟁사 현황을 정리한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마케팅 전략적 이슈를 나름대로 포함시키다 보니, 보고서는 어느새 박사 논문처럼 두툼해졌다. 대부분 관련자들에겐 이메일로 자료를 공유하였으나, 임원급들에겐 이메일뿐만 아니라 인쇄된 레포트도 함께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칼라 프린트로 두꺼워진 보고서를 10부씩 인쇄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는 오늘도 이팀장 책상 위에 보고서를 올려 놓고 퇴근하면, 앞으로 열흘이나 남은 10월 한 달도 대충 때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때는 본인 스스로도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고, 때론 때를 기다리는 강태공인양 스스로를 위안하며 시장조사 나간다는 명목으로 사무실을 빠져 나와 하루를 소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시장조사 모임의 경쟁사 직원들로부터 입사 제안을 몇 번 받아 본 적도 있었지만, 마케팅부로 옮긴지 1년도 되지 않아 적응 못하고 도망쳤다는 손가락질이 두렵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의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한 게 억울해서 좋은 조건을 사양하기도 했었다.

이미 9시가 넘은 시간이라 이팀장은 퇴근하고 자리에 없었다. 신대리는 보고서를 책상 위에 던지듯 놓고, 자리로 돌아가서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때 갑자기 책상 위에 휴대폰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웬 전화지?’

신대리는 사무실 정막을 요란스럽게 깨뜨리는 소음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휴대폰을 주어 들었다.

“네, 신대리입니다.”

“신대리? 오랜만이야. 나야, 강소장.”

“야, 이게 누구야? 잘나가는 소장님이 밤 늦게 어쩐 일로?”

“아직 퇴근 안 했니? 그냥 오랜만에 소주 한잔 하자고. 마침 본사 근처를 지나가던 중이라서…"

"야~ 임마~! 그럼 진작 전화했어야지. 내가 마침 보고서 때문에 아직 회사에 있으니 망정이지...."

"아~ 그래? 다행이네. 우리 자주 갔던 곱창집에서 10분 후에 볼까?”

“그래 알았다. 나야 뭐,,, 언제나 대 환영이지.”

강소장은 영업소장으로 나간 후, 모든 시간과 노력을 시장 개척에 투자하였다.

특히, 대형 화장품전문점이 밤 늦게 문을 닫기 때문에, 강소장도 대형 전문점 사장과의 관계를 위해 자연 귀가가 늦어져서, 친구인 신대리도 강소장과 별도로 시간을 내서 개인적으로 만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 동안 신대리가 먼저 여러 번 만남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약속 있어서 안 된다는 강소장의 말에, 그가 성공하더니만 많이 변했다고 마음 상한 적도 없지 않아 있었던 참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강소장의 전화를 먼저 받으니 그간의 아쉬움보다 반가움이 먼저 앞서는 걸 보면, 역시 친구 좋다는 게 뭔지를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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