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마케터 여러분! 오늘 근 5년 만에 다시 우리회사에 돌아오게 되어서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같은 훌륭한 인재들과 함께 근무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고,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어 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과거 나와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도 있어서 알겠지만, 그 때만해도 우리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강력한 일등 브랜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일등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급변하는 시장환경 속에서 이제는 일등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으며, 이에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당장 변해야 합니다.
따라서 나는 지금부터라도 당장 일등을 할 수 있는 전략만을 구사할 것입니다. 비록 회사 전체 규모로 볼 때 대기업인 경쟁사들을 이기고 일등이 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세분시장 내에서는 우리가 일등을 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나를 믿고 따라 온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탓하는 일 또한 절대 없을 것을 약속 드리며 짧게나마 인사말을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각 팀별 업무 보고를 일주일 내에 해주시기 바라며, 그 동안 팀장들과는 1:1 개별 면담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점심식사 맛있게 하시고 오늘 오후도 힘차게 보냅시다.”
민이사의 굵고 힘찬 목소리에는 강한 의지와 열정이 배어있었다. 신대리는 그의 짧은 인사말과 첫인상을 통해 어쩌면 이팀장과의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기대가 생겼다가 이내 고개를 설레 흔들며 작은 바램을 지워 버렸다.
‘예전부터 이팀장과 잘 알던 사이일텐데 뭐….’
그러나 민이사가 예기했던 일등 전략은 바로 지금까지 신대리가 M&C를 통해 하고 싶었던 것과 바로 일치하는 얘기인 터라, 신대리는 여전히 답답한 마음 속 한 구석에 작은 불씨 하나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 때만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케팅부 내에서도 세 개의 팀과 디자인팀, 홍보팀, 소비자상담팀의 업무보고와 개인면담이 마치 회오리 몰아치듯 급박하게 진행되었지만, 신대리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이 조직에 있지만 없는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팀장은 신대리가 끼어들기 전에 민이사와의 끈을 확실하게 잡는 것이야말로 지난 번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는지, 과거 그를 궁지에 몰리게 했던 신대리가 민이사를 만날 기회를 철저하게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신대리는 때론 포장개발팀 김대리와 때론 자재팀 이대리와 함께 구로, 부천, 안산 등을 누비며 포장재 개발 거래선을 방문하여, 포장재 개발 과정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들의 영세한 현실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결국 협력업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이 디자인팀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회사의 프로세스와 갑과 을의 지배구조적인 현실 속에서 과연 얼마나 경쟁력 있는 양질의 제품이 생산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갈수록 더 커지기만 했다.
또한 협력업체를 방문하고 사무실에 돌아온 신대리는 늦게까지 사무실에 홀로 남아 M&C의 브랜드숍 사업계획을 마무리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어쩌면 신대리도 자신이 처한 환경을 회피하다시피 일부러 밖으로 더 나다닌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팀장 입장에서 이렇게 거의 사무실에 붙어있지 않는 신대리를 민이사로부터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