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53. 사업개발팀(10)

박성준은 현장에서 바로 퇴근을 하였지만 신대리는 저녁이 다되어 사무실로 복귀하였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조윤희의 번역 일부터 챙겼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많아진 분량의 사업계획서를 다 끝내지 못하고, 토요일에 나와서 마무리 짓겠다는 약속의 말뿐이 할 수 없었다. 애초에 M&C 본사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영어가 아닌 불어로 번역하기로 했기 때문에, 신대리도 지금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었던지라 안타깝기만 하였다.

그는 책임감 있게 일하는 그녀에게 미안함과 대견함을 느끼며, 그저 뒷 일을 부탁한다는 위안과 격려의 말만 해줄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오후, 계획서가 걱정이 된 신대리는 여지없이 발길을 사무실로 옮겼다.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습한 무더위에 그는 숨이 턱 막혀왔다. 초여름 오후의 무더위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꽉 막힌 작은 사무실은 마치 사우나에 처음 들어가는 것처럼 한 순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이 된 신대리는 그의 자리에 가방을 내려 놓고 겉 옷을 벗어 놓고는 사무실을 죽 둘러봤다. 책상 여기저기에는 흩어져 있는 자료만 눈에 뜨이고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조윤희의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서류들 위로 낯선 문자로 인쇄된 서류 묶음 하나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그녀의 자리로 가서 잠시 자료들을 살펴봤다.

비록 읽을 수 있는 글자는 하나도 없었으나, 이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는 그는 그림만 봐도 내용이 제대로 구성되었는지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서류 군데군데에 빨간 펜으로 수정한 단어들이 여럿 눈에 뜨이는 것이, 그녀가 내심 혼자서 무척 고생했음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송팀장은 처음 미셸리를 만난 이후로 이젠 제 일을 다했다는 듯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서류를 대충 흩어보기만 했는데도 이마에서 어느 새 땀이 흘러 내릴 정도인지라,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막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참에 조윤희가 때마침 들어왔다.

“어머? 대리님, 어쩐 일이세요?”

그녀는 평상시 입던 정장 스타일이 아니라, 짧은 반바지에 흰 색 민소매 셔츠 차림과 화장기 없는 생 얼굴에 단발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한층 발랄한 모습의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아…. 좀 걱정도 되고, 미안도 해서….”

신대리는 갑작스런 당혹감에 말을 더듬거렸다.

“제가 그리 못미더웠나요? 걱정 마세요. 이제 조금만 수정하면 다되니까요.”

“아니, 그건 아니고 조금이라도 뭔가 도울게 없나 해서. 그런데 어디 다녀오는 중이야?”

“아~, 너무 더워서 세수도 하고 시원한 음료수 하나 마시고 오는 중이어요.”

“그러게, 휴일이라고 에어컨도 안 나오네. 우린 선풍기도 없고 말이야. 아 참…, 옆 구매팀에 선풍기가 하나 있던데, 내가 바로 그거라도 가지고 올게”

신대리는 마침 생각 났다는 듯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구매팀에서 선풍기를 들고 와서는 바로 스위치를 켰다. 순간 갑작스런 선풍기 바람에 책상 위 서류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자, 둘은 깜짝 놀라며 흩어진 서류들을 주워 담느라 더 진땀을 빼야 했다.

“아~ 이런…. 미안해. 도와준다는 게 더 방해가 됐네.”

신대리는 애써 주운 서류들을 페이지에 맞게 재배치 하며 미안한 마음에 주저하듯 말했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조윤희는 마냥 재미있다는 듯이 천진스런 소녀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대리님, 괜찮아요. 아까는 숨도 못 쉴 정도였는데, 그래도 시원하니 참 좋네요.”

창문으로 바람조차 통하지 않던 사무실에 하나뿐인 선풍기라도 그들에겐 커다란 고마움처럼 사무실은 서서히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서류가 정리되고 다소 더위가 식자, 그녀는 다시 번역작업에 몰입하였고, 그 동안 신대리는 얼마 전에 구입했다가 미처 읽지 못하고 있던 마케팅 서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신대리의 경험으로 볼 때 어차피 일로써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이라도 사무실에서 홀로 일하는 사람에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더 보내서야 조윤희는 번역을 다 끝낼 수 있었는데, 그 동안 그녀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마치 도서관처럼 조용한 사무실의 정적을 깨며 바쁘게 울려 펴지고 있었다.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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