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38. 마케팅 전략 조사보고(9)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한 신대리는 아직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 평소 9시 꽉 채워서 출근 하던 박성준도 나름 일찍 출근한다고 나왔지만, 아직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평소 사장은 8시 좀 넘어 출근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출근하자마자 보고서를 읽으셨다 해도 어떤 결과가 나오기는 아직 먼 시간이었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여간 조급한 게 아니었다. 어느새 10시가 지나 이미 다른 사람들은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일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이팀장이 뛰어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에 점점 더 조급해지기만 했다.

“대리님, 우리 옥상이라도 올라가 바람이라도 쐴까요?”

답답함을 참지 못해 박성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나도 좀이 쑤셔 죽겠다. 날이 좀 춥지만, 자금 당장은 맑은 공기가 필요해. 어서 가자.”

두 사람은 옥상에 올라가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한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 두 사람은 추운 줄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따뜻한 커피마저 다 마셔 버리게 되자 갑자기 추위가 엄습해 들어왔다. 마침내 두 사람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와야만 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이미 회사는 발칵 뒤집혀 있었다. 이팀장과 김상무가 사장실로 불려갔고, 신대리를 급히 찾는다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급히 나가느라 휴대폰을 책상에 놓고 간 게 탈이었다.

‘그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신대리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귀를 때리며 울려 퍼지는 것처럼 느낄 정도였지만, 이를 애써 참으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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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장 전자회사에서 지점장과의 악연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끈기, 그리고 새로운 발상으로 승승장구 했던 나는 당시 1년에 300억원이나 매출을 했던 전국 1등 대리점을 담당하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축하 받을 일처럼 보이지만, 그때 나는 단지 총알받이나 다름없는 역할이었다.

하이마트 같은 양판점의 증대와 홈쇼핑, 인터넷 매출의 증가로 점차 매출이 하락하게 된 이 대형점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회사는 목표 달성을 위해 이곳에도 대규모 물량을 밀어내었고, 이에 대리점사장은 그 동안 회사와의 밀월관계를 깨고 더 이상 못하겠다며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 규모의 거래선은 과장급이 담당을 하며 지점장이 직접 챙기는 전략적인 거래선으로써, 이제 만 2년이 지난 사원인 내가 담당하긴 너무 큰 일이었지만, 전 담당자와 악화될 대로 악화된 관계 때문에 당시 지점장은 그 짐을 또 다시 내게 넘겨 버린 것이다.

나는 매일 영등포 시장에 있는 대리점 사무실로 출근하다시피 방문하였다. 그러나 사장은 사무실에 나오질 않았고 영업전무만이 나를 만나주었지만, 그는 어떤 의사결정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의 밀어내기식 영업에 사장은 필요한 제품 이외에는 절대 받지 말라는 지시를 남긴 채, 지방 모처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휴대폰도 꺼져 버린 채 연락두절인 대리점 사장과 대화할 수도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리점 전무와 대화를 하며 간신히 설득을 하여, 그나마 월 5억 정도였던 주문을 거의 10억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회사가 기대하는 매출목표에 반도 안되는 최악의 실적으로 임원에게 불려갈 수 밖에 없었다. 국내 실적 1등을 다퉜던 우리 지점은 1등 대리점의 실적 급락으로 임원에게 모두 불려가 질책을 받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엄청난 비난과 함께 무능력자로 낙인 찍힐 수 밖에 없었다. 그간 내가 다른 대리점들에게 했던 노력과 우수한 실적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특히, 임원이 있는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상황을 잘 아는 지점장은 나를 보호해주기는 커녕, 그 자리에서 더 심한 강도로 나를 질책하였고, 전임자와 지점장이 잘못한 일들을 미쳐 수습하기도 전에 나는 그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고 말았다. “말에게 실렸던 짐을 설마 벼룩 등에 실을까?”라는 속담이 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게 현실인 것이다.

회의가 끝난 오후 나는 바로 회사를 나와서 많은 술을 마셨고, 다음 날 사표를 제출하였다. 결국 나를 내보내고 싶어했던 지점장의 뜻대로 나는 견디지 못하고 2년 반만에 남들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인 대기업 전자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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