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싸움 33. 마케팅 전략 조사보고(4)

“그래요? 요즘 대리님 눈치 보느라 힘들었어요.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는지, 뭐라 말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일도 모두 다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신대리는 깜짝 놀랐다. 자신은 티 안내고 혼자서 잘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박성준 눈에는 그의 행동들이 이상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신대리는 얼른 그의 입을 막으며 말을 했다.

“성준아~ 잠깐만, 우리 회의실에서 얘기 좀 할까?”

“네? 아~, 그러지요.”

박성준은 역시 이상하다는 듯이 신대리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오며 말을 했다.

“그러게, 뭔 일 있는 거죠?”

“아냐? 뭔 일은…. 그냥 벌써 연말이라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뜨네”

“사실 저는 대리님이 다른 회사로 떠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어요. 사실 저 같아도 그래요. 회사에서 잘 알아 주지도 않는 조사나 하고, 입사한지 몇 년 안 된 저도 벌써 권태롭기까지 하니…. 입사동기들은 저보고 한직이라 부럽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짜증 납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동안 대리님 눈치 보느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 참에 얘기해도 될까요?”

“아, 그래? 그 동안 너무 신경 못써줘서 미안해. 무슨 얘기인데?”

신대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박성준의 얘기를 기다렸다.

“저… 시장조사 업무 그만하고 영업하고 싶습니다. 저도 동기들처럼 직영영업소로 가서 직접 영업 최일선에서 뛰고 싶습니다. 이번 연말 인사이동 전에 대리님이 팀장님께 말씀해 주세요.”



신대리는 박성준 역시 자기와 똑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그 동안 자기 고민에 빠져 박성준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 하지만 지금 직영영업소 가면 고생이 심할텐데…. 내가 중부영업소 강소장에게 들은 얘긴데 어려움이 장난 아니더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봐.”

“아뇨! 전 결정했어요. 대리님이 반대하시면 제가 직접 팀장님께 얘기하겠습니다. 저 진짜 재미없어요. 대리님도 그렇잖아요? 그러니 맨날 밖으로만 돌고, 최근에는 사무실에서 둘이 같이 제대로 일한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직장 생활입니까?”

신대리는 한 순간 만감이 교차하였다. 박성준에게 자신의 진실을 얘기해야 할지, 아니면 그의 요청대로 영업으로 보내줘야 할지…. 그러나 확실히 직영영업소에 가면 박성준의 미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그 동안 잘 해준 것도 없는 하나뿐인 후배가 앞날이 깜깜한 직영영업소로 간다는 것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신대리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말했다.

“성준아~, 사실 이건 비밀인데, 나도 회사 사정이 답답해서 나 혼자 별도의 일을 진행하고 있었어. 내가 혼자서만 한 이유는 이팀장에게 흘러 들어가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야. 네게 숨긴 건 진짜 미안하다.”

신대리는 그 동안의 자초지종을 박성준에게 다 털어놨다. 강소장을 만난 일, 이팀장에 대한 의심, 혼자서 조사한 일,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까지 짧지만 확고하게 그의 신념을 모두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너랑 둘이 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어. 미안했다. 그래도 좀 이해해주라.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한 일이야, 지금부터라도 나랑 같이 하자. 사실 나도 혼자 하기 벅찬 일이라 생각하거든.”

“하~! 세상에 대리님이 절 못 믿고 있었다니. 저는 그냥 직영영업소로 가겠습니다. 어쨌든 대리님 비밀은 지켜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성준은 황당하고 비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남기고 훌쩍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순간 신대리는 비밀을 다 얘기해 버린 게 후회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박성준에게 미안스럽기도 한 것이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자리에 돌아온 박성준은 모니터를 마냥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는 것 같았다. 신대리는 어떻게 말을 걸지 몰라 안절부절하며 하루 종일 자리도 떠나지 못한 채, 후배 눈치만 보며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박성준이 말을 걸었다.

“대리님 술 한잔 사주세요.”

“그래, 가자. 뭐 먹고 싶은데?”

“비싼 거로 사주세요. 회 먹고 싶습니다.”

그 날 신대리와 박성준은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박성준이랑 이렇게 진솔하게 얘기한 적이 가뭇가뭇할 정도로 오래된 것 같았다.

처음 신대리가 시장조사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그의 열정이 박성준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변한 그의 모습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박성준은 자기가 도움이 되지 못해 속상하기도 했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같이 하게 되어서 고맙다고도 했다. 신대리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좋은 원조군이 옆에 있는데도 몰라 미안하다고 했다. 이제라도 둘이 한번 회사를 바꿔보자고 다짐도 했다.

신대리는 비로소 믿을 수 있는 박성준이란 좋은 후배 한 명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무척 기뻤다. 그 날 이후로 둘은 회사관계를 떠나, 개인적으로 호형호제하며 10년이 넘도록 믿을 수 있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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