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20. 세장조사 업무(7)

레스토랑은 요즘 새로 생기는 밝고 화사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신대리가 대학 시절에 많이 다녔던 곳과 비슷하게 전체적으로 어둡고, 칸막이와 방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예전에 이런 곳은 주로 여학생들이 몰래 담배 피우려고 많이 모였지만, 요즘은 여자들도 숨어 피우지 않기 때문에 점차 없어지는 추세였다.

신대리는 하얀 눈 세상에서 갑자기 어두운 나라로 떨어져 들어온 것처럼, 한 순간 장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디로 찾아가야할 지 모른 채 무작정 길이 나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때 마침 신과장이 엉뚱한 곳으로 지나가는 신대리를 보고 부르자, 소리 나는 방향으로 급히 몸을 돌려 점차 익숙해지는 어둠 속에서 자리를 찾아 갈 수가 있었다. 좀 더 구석지고 밀폐된 방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신대리는 다행히 자신보다 늦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눈 때문에 사람들이 다소 늦어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대리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신대리의 인사에 모두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낯 설은 사람들 틈 속에서 지난 주에 만났던 입사동기였으나 1년 전 다른 회사에서 둥지를 새로 튼 송대리가 더욱 반가와 보였다. 각자의 통성명이 끝나자 신대리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을 꺼냈다.

“아니, 누가 이런 추억 속의 장소를 찾으셨어요? 대학 1학년 때 이후론 이런 곳은 처음인 것 같네요. 하하~”

신대리의 쾌활한 질문에 신과장이 응대했다.

“사실, 우리 모임이 회사에도 밝히지 않고 비밀스럽게 모이는 것이라, 가능하면 남의 눈에 안 띄는 곳을 섭외하려고 했더니, 여기 L사의 지과장님께서 이곳을 추천해 주셨어요. 아무래도 연대를 나오셔서 그런지 이쪽 장소는 잘 아시는 것 같지만…. 예전부터 지과장님은 이런 음침한 곳을 좋아하셨나 봐요?”

신과장의 농짓거리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다소 풀리는 듯 모두들 활짝 큰 미소를 지었다. 이런 저런 각자의 회사 얘기와 화장품업계의 문제점 등을 주고 받는 사이, 나머지 두 명이 도착하여 다들 명함을 건네며 악수를 하느라 또 한번의 소란이 오고 갔다.

“자 그럼 각자 소개도 마쳤고, 이제 준비한 거 꺼내서 다 같이 공부해야죠?”

자연스럽게 회의의 주도자가 된 신과장이 말했다.

“네? 공부요? 아하~, 네, 열심히 공부해야죠~!”

신과장의 공부하자는 얘기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사람들도 신대리의 대답에 이제야 이해가 갔다는 듯, 각자 가방에서 두 페이지의 A4용지를 꺼내서 참석자들에게 서로 돌려주느라 분주해졌다. 이미 약속한 대로 12월 마케팅 정책과 신제품 계획이 동일한 양식에 정리되어 있었다.

당초 약속한 바는 회사의 중요 중장기 비밀사항을 서로 공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당면한 다음 달의 마케팅 정책과 새로 출시되는 신제품 정도를 공유하기로 했던 것이다. 모두들 이 정도는 다음 달이면 시장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미리 공유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각 사의 시장조사 담당자들이 많은 다리 품을 팔아서 거의 1개월 동안 정리해야 할 정보였는데, 이번 모임을 통해서 이미 정리된 정보를 보다 쉽게 입수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 정보의 다양성 및 신뢰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저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희 회사의 12월 판촉정책은 겨울 주력 판매 제품인 에센스를 10:2 할증을 하고요….”

신과장의 설명에 모두들 진짜 학생으로 돌아간 것 마냥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질문도 하고 메모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덟 회사의 설명이 끝났을 때는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두운 좁은 골방에 담배 연기로 찌들은 사람들 눈은 저마다 퀭하니 반쯤 풀려 보였다.

“자, 이제 그만 끝내고 출출한데 우리 저녁식사 하며 소주 한잔 마시죠. 원래 한국 사람들은 술 한잔 같이 마셔야 친해지는 것 아닙니까?”

신대리의 활기찬 제안에 모두는 좋아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덧 밖은 늦은 밤처럼 어두웠고,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많이 가늘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옆 삼겹살 집으로 발을 옮겼다.

이번 모임을 시작으로 향후 회원은 12명으로 확대되었으며, 여러 해 동안 담당자들이 회사의 인사이동에 의해 바뀌어도 모임은 계속 새로운 인물들에게 인계되어 지속되었다. 신대리 또한 나중에 이 모임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도, 이 모임을 후임자 한 명에게만 비밀리에 전수하였고, 초기 회원들 모두 시장조사 업무를 떠나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거나 퇴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서로간의 좋은 인간관계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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