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팀장을 보자마자 민이사는 왜이리 늦게 왔냐는 듯이 대뜸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M&C 런칭 품의서가 어떻게 된거지? 왜 아직도 이팀장이 가지고 있느냐 말이야?”
“그게, 내용도 꽤 많고요, 아직 신대리가 부족한 게 많아서 수정할게 많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려서 말입니다. 빨리 수정해서 다시 결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뭐가 그리 수정할게 많은지 그럼 어디 내게 설명해 보게.”
뜻밖의 질문에 이팀장은 당황하여 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팀장은 민이사의 작은 눈이 엑스레이마냥 샅샅이 자신의 속을 꽤 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 사실은 말이죠. 이 품의서는 신대리가 다 했고, 저는 다른 일들이 바빠서 아직 자세히 검토하지를 못했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검토해서 바로 결제 올리겠습니다.”
“이팀장!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아는가? 이팀장이 그냥 가지고 있는 동안 자네가 내 시간을 그만큼 뺏은 거나 다름없네. 그리고 다른 일도 아니고 M&C 프로젝트는 우리회사 사활을 건 것이고 사장님께서 얼마나 관심이 많은 프로젝트인지 알아, 몰라?”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튼 검토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으니, 이팀장은 바로 싸인만 하고 내게 올리게. 어차피 자네는 전혀 관여 안 하고 신대리가 다한 거라고 자네 입으로 직접 말했으니, 내가 직접 검토하겠네.”
“그렇지만 말이죠, 이사님. 그래도 제게 한 번만 더 시간을 주십시요. 신대리는 마케팅이 뭔지도 잘 모른단 말이죠. 아무래도 제가 다시 봐야….”
순간 민이사는 더욱 험악한 표정을 지우며 이팀장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뭐가 이리 잔말이 많아? 됐어. 자넨 그 품의서에 싸인도 하지 말게.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M&C 프로젝트에는 관여도 하지 말라고. 이제부터 그 일은 내가 신대리와 직접 할테니까. 그만 나가보게.”
이팀장은 뭐라 한 마디를 더 하려다가, 싸늘히 등돌린 민이사에게 더 이상 말을 했다간 더욱 큰 코를 다칠 것만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뒤돌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때 그의 등뒤로 민이사의 말이 들려왔다.
“지금 들고 있는 게 그 품의서 같은데 내 책상에 놓고 가게.”
그리고 민이사는 바로 신대리를 다시 호출했다.
민이사 방에서 큰 소리가 나자 모든 사람들은 신대리 때문에 또 다시 사단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다들 신대리가 항상 윗 상사 뒷통수 치는 놈이라고 더욱 그를 경원할 것이 뻔했다. 신대리는 한숨을 쉬며 다시 민이사에게 갔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신대리, 긴 말 안 하겠네. 이제부터 자네는 이팀장을 걸치지 말고 내게 직접 보고하게. 말인 즉, 이제부터 자네가 팀장이라는 거네. 내가 바로 인사팀에 통보해서 자네를 M&C 팀장으로 발령 낼 테니까 그리 알게.”
신대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뭔 얘기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민이사는 폭풍우 몰아치듯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품의서 내가 자세히 다시 볼 것도 없네. 내가 지금 바로 싸인할 테니 바로 진행시키게. 단지 런칭 데이트만 수정했으면 좋겠는데, 내후년 2월이면 2008년 아닌가? 그건 너무 늦어. 내년 가을 시즌을 목표로 해서 9월1일에 브랜드숍 1호점을 오픈하도록 하게.”
민이사의 갑작스런 폭탄 선언에 신대리는 정신이 확 돌아왔다. M&C를 브랜드숍으로 하려면 최소한 300품목은 갖추어야 하는데, 포장개발팀 김대리 얘기로는, 주력 품목 약 100가지 정도는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금형을 개발하고 나머지는 협력업체의 프리몰드를 쓴다고 해도 용기 개발만 해도 6개월 이상이 걸리고, R&D에서 내용물 개발이나 디자인이 지연되거나 포장재 제작 과정 중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적어도 12개월은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당장 9월이면 9개월뿐이 남아 있지 않은가? 아직 브랜드 컨셉 및 디자인 방향도 나와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