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싸움 30. 마케팅 전략 조사보고(1)

다음 날 아침, 신대리는 술이 덜 깬 눈으로 간신히 출근하였지만, 정신만은 또렸했다. 어제 밤에 이팀장 책상 위에 올려놓은 보고서를 술김에 확 치워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 늦게 출근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이내 마음을 비우고, 자리에 쓰러지듯 앉아 졸린 눈을 간신히 뜨며 컴퓨터를 켰다. 오늘따라 유난히 컴퓨터 부팅되는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기다리는 동안 문득 어제 강소장과 나눴던 얘기가 생생하게 생각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함께 있는 박성준이 문제였다. 분명, 혼자 하기 벅찬 일이지만, 박성준에게 도움을 청할 일은 아니라 생각됐다. 게다가 별도의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 자칫 이팀장 귀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위장도 해야 한다. 문득 지난 번에 읽었던 손자병법의 군쟁(軍爭)편에 나왔던 구절이 생각나자 그는 얼른 책을 꺼내 다시 한번 찾아봤다.

‘선지우직지계자승(先知迂直之計者勝)’, 즉 가까운 길을 돌아가는 법을 먼저 아는 자가 승리를 거둔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우위직, 이환위리(以迂爲直, 以患爲利)’란 말도 생각났다. 해석하면 돌아가는 길이 곧장 가는 길이 되어, 나의 어려움을 유리함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그 길은 돌기도 하고, 미끼를 던져 적을 유인하기도 하고, 상대방보다 늦게 출발하고서도 먼저 도달하기도 하는 것이다(후인발 선인지, 後人發 先人至). 이와 더불어 병법36계에는 "암도진창(暗渡陳倉), 즉 암암리에 진창으로 건너간다’라는 말도 있다. 한(漢)의 명장 한신(韓信)이 관중을 쳐들어갈 때, 파괴된 도로를 수리하는 것처럼 하고 우회하여 진창(陳倉)을 진격하여 적의 허를 찔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병법서에 나오는 글귀들을 보며 신대리는 생각했다.

‘흠~ 맞아. 적에게 어리숙하게 보이거나, 조금 더 돌아감으로써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말은 단순히 적을 속이는 방법으로만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전략이야. 허허실실, 그러면서도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만들어야만 해. 세상은 때로는 곧장 가는 것보다 돌아가는 것이 유리할 때도 있는 거야. 처음에는 돌아가는 것이 무척 어렵고 힘들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고 원칙에 맞게 로직에 따라 우직하게 가다 보면, 나중에 내가 바라던 이상의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야. 바로 눈 앞의 화를 참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승부하자.’

결국 유비가 조조에게 바보 행세를 했듯이, 신대리도 이팀장에게 권태로운 모습을 계속 보여주기 위해서는 같이 일하는 후배인 박성준조차도 속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술 냄새 푹푹 풍기며 간신히 생각을 정리하며 오전을 보내고 나서야 제대로 일을 시작할 수가 있었다. 그는 그 동안 보고서에 포함했던 신 브랜드인 아미앙떼의 현황과 안테나 매장을 통한 고객 의견을 따로 뽑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신대리는 아미앙떼 출시 후 6개월 간의 매출실적과 실판매 실적을 먼저 분석해보고, 투여된 예산에 대한 비용 효율 및 광고, 판촉 효과에 대해서도 정리 하였다. 안테나 매장의 의견은 다소 편중된 경향이 있어서 좀 더 넓은 조사가 필요함을 느꼈으나, 일단 지금까지 조사 결과만으로도 아미앙떼의 문제점들이 충분히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년 간 시장조사 업무를 통해 환경분석이 모든 전략의 가장 기초가 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다. 특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성숙시장에 접어든 화장품 산업에서는 무엇 하나라도 남들과 다르기 위해서 먼저 경쟁사를 더욱 깊이 들여다 봐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더욱 시장에서 아미앙떼의 현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다.

어제 마신 술이 과해서인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하자는 생각에 책상을 정리하며 문득 창 밖을 내다봤다. 먼저 퇴근한다며, 월말 보고서도 어제 다 끝냈는데 뭘 이리 열심히 하시냐는 박성준의 질문에, 그냥 보고서를 다시 정리해보는 거라며 별거 아닌 냥 넘겨버리고 업무에 몰두한지 얼마 안된 것 같았는데, 벌써 8가 넘어 밖은 무척 어두웠다. 그는 얼른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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