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팀장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마냥 놀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조윤희를 회의실로 데려 갔다. 회의 실에 들어오자 조윤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잘 아시잖아요. 사업개발부에 있을 때부터 송팀장님 때문에 저 힘들어 했던 거요. 이젠 도저히 안되겠어요. 그냥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래서 미리 인사도 할 겸 찾아왔었던 것인데, 진짜 이른 아침 시간 아니면 얼굴보기 힘드시네요.”
이미 조윤희는 마음의 정리를 다한 사람처럼 보였다.
“윤희씨! 뭔 소리야? 그만 두면 안되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M&C 브랜드를 들여왔는데, 윤희씨가 결실도 맺기 전에 떠나면 안되지.”
신팀장은 순간 ‘앗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여지 것 조윤희를 잊고 있었을까? 기초 담당자를 계속 마케팅 부서 내부에서만 고민했었는데, 조윤희를 전혀 생각조차도 못했던 것이다. 작년 조윤희와 깊은 포옹을 했을 때 떨리던 감정의 끝자락이 다시 새롭게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신팀장도 자기도 모르게 쏠리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조윤희를 무의식적으로 잊으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언젠가 윤희씨랑 성준이는 나랑 다시 꼭 일할 거라고 말했잖아. 그렇잖아도 마케터가 더 필요해서 조윤희를 추천하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그만 두려고 한단 말이야?”
“네? 정말이에요?”
순간 조윤희의 얼굴이 환해졌다가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송팀장님이 놔줄까요? 내가 비서겸 번역겸 다 해주고 있는데….”
“걱정 마, 윤희씨. 내가 민이사님께 잘 말해볼게. 지금 우리회사에서 M&C가 가장 우선순위의 프로젝트야. 더욱이 윤희씨 같은 인재를 떠나 보내면 회사로써는 더 큰 손실이지, 그렇고 말고. 걱정하지마. 송팀장님은 민이사님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해볼게.”
신팀장은 잠시 생각을 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36계에 혼수모어(混水模漁)라는 말이 있어. 물을 혼탁하게 만들어서 물고기를 잡는다는 말인데...."
"풋~~"
순간 조윤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밝게 웃었다.
"어? 왜 웃어?"
"아뇨. 오랜만에 듣는 사자성어라 반가워서 그래요. 아뭏튼 여전하시네요, 저도 병법서들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아~, 그런가? 하하하~!"
신팀장도 한바탕 밝게 웃었다. 조윤희와 함께 있으니, 이른 아침부터 그 동안의 스트레스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혼수모어(混水模漁)는 적의 내부를 혼란시켜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다음, 아군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세를 이끌게 하는 전략이야. 그러니 일단 윤희씨는 사무실로 돌아가서, 송팀장에게 그만 두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과감하게 해. 송팀장은 윤희씨가 없으면 갑갑할테니 분명 잡으려고 하겠지. 그때 송팀장의 개인적 업무에 대해 하기 싫다고 솔직히 다 말하는 거야. 이런 식으론 일 못하겠다고.... 아마도 송팀장은 크게 당황해서 윤희씨가 그 때문에 떠나겠다는 것을 막지 못 할거야. 그때 민이사님을 통해서 윤희씨를 우리 팀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말이 전달되도록 하는 거지. 그러면 윤희씨가 회사를 떠나지 않고 비밀을 지킬테니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는 거야. 알겠지? 나만 믿고 있어.”
조윤희는 신팀장의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돌아가서 팀장님 말대로 할게요. 고맙습니다.”
돌아가는 조윤희를 바라보며, 신팀장도 큰 고민 하나를 해결한 것 같아 매우 기뻤다. 그는 민이사가 출근하기만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나오는 민이사를 보고 그대로 방까지 따라 들어갔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