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76. 마케팅 팀장이 되다(4)

“이사님, 품의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M&C는 단순히 브랜드만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숍 매장을 오픈하는 것이라서 제품도 300품목을 개발해야 하고, 제품뿐만 아니라 매장의 컨셉과 인테리어 디자인, 매장 운영 메뉴얼 등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벌써 12월도 반이나 지나갔고, 연말연시에 설날 연휴까지 끼면 9개월 내로 1호점을 오픈하는 건 진짜 불가능합니다.”
        
 “신대리, 앞으로 내게 불가능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게. 단지 좀 더 어려운 일일 뿐이야.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기회는 없는 것이야. 내가 좋아하는 정주영 회장이 하신 말씀이 있네.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라. 찾아도 없으면 길을 만들어라. 알겠나?”

  특유의 강한 어조로 처음 입을 열었던 민이사는 어느새 부드러운 말투로 신대리를 대하고 있었다.
         
  “이팀장은 신대리가 마케팅 경험이 없다고 자꾸 말하지만, 난 오히려 그게 더 좋다네. 신대리는 섣부른 마케팅 지식이나 경험 같은 찌든 때가 묻지 않은 하얀 도화지 같은 존재야. 이제부터 내가 멘토(Mentor)가 되어 신대리를 코칭(Coaching)하여, 하얀 도화지에 밑 그림을 그리게 해 줄 테니, 신대리는 그림에 자기만의 색깔을 채워 넣어서 명화가 될 수 있도록 완성해 나가길 바라네. 나는 무엇보다도 신대리의 열정을 믿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해줄 테니 신대리가 팀장으로서 필요한 것은 모두 내게 요청하게. 일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야, 알겠나?”
       
  민이사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바로 품의서에 싸인을 하는 한편, 출시 일자에 펜으로 두 줄을 쭉 긋고 바로 2007년 9월 1일이라고 썼다. 신대리는 그렇게 민이사 방을 나섰다. 한편으론 앞당겨진 출시일정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팀장이 되어 이팀장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에 희열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래 어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신대리는 민이사 방을 나서자 마자 포장개발팀으로 향했다. 이제는 그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일만 남아 있었다.

  김대리는 축하와 함께 신대리가 이팀장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였지만, 한편으론 9월 런칭에 대해서 난색을 표명하였다.

  “그게, 민이사님 말씀 대로 당기라면 당겨지는 게 아니라 금형개발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어서 될 수가 없어요. 한두 품목도 아니고….”
  “그래도 사람 하는 일인데, 뭔가 방법이 있지 않겠어? 우리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어 보자고. 김대리가 처음 나 만났을 때 그랬잖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자고.”
  “그렇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데요.”
       
  “김대리, 배수의 진이란 것 잘 알지?"
  "그야 잘 알죠. 강을 뒤로 하고 진을 쳐서 병사들이 후퇴하지 못하게 하여 목숨 걸고 싸우게 하는 거 아닌가요?"
  "손자병법에도 분주파부(焚舟破釜)라는 말이 나오는데, 돌아 갈 배를 불태우고 밥해 먹을 솥단지를 깨부순다는 말이야. 배수진보다 더 구체적이고 절실하지 않니? 그 절실함이 승리를 가져온다는 거야. 우리도 M&C를 9월까지 런칭하지 못하면 회사 떠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절박하게 만든다면, 뭐든지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도 물리적으로 안 되는 일은 안 된다는 게 진리입니다. 금형을 개발하는 일은 절대 정해진 기간을 줄일 수가 없어요."

  김대리는 엔지니어답게 기술적 한계를 이해 못하는 신대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확고하게 말하였으나, 신대리 또한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김대리,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하잖아. 지금까지의 프로세스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변화시킨다면 분명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글쎄요.... 그게 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럼 우리 같이 NPD(New Product Development) 프로세스 전체를 다시 살펴보자. 금형 개발이나 포장재 생산 기간처럼 물리적으로 줄이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일정을 줄이고, 뭐 하나 끝나야 다른 하나로 넘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분명 방법이 나올 거라 생각해.”

  "음... 근데 일이 그렇게 잘 돌아가지 않아요. 디자인이 나와야 설계를 하고, 설계가 나와야 금형을 만들 수 있단 말이죠."
       
  "김대리, 그렇지 않아. 우리 몇 년 전만 해도 테이프로만 음악을 들었잖아.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 뒷 노래를 듣고 싶으면 지금 노래가 끝나기 기다리던가, 아니면 테이프를 빨리 돌려야 했잖아. 하지만 지금은 CD나 MP3로 얼마든지 원하는 곡을 바로 들을 수 있으니, 이런 혁신적인 제품들이 만들어지기 전에 누가 이런 생각을 했었겠어? 우리 일도 마찬가지라 생각해. 테이프가 아니라 MP3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거야."

  신대리의 말에 김대리도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신대리의 설득력 있는 말을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건 우리 둘만 얘기해서 될 일은 아니고, 관계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의논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디자인과 구매, 그리고 R&D 쪽 사람들이 모두 다 함께 모여야 될 것 같아요.”
 “알았어. 그럼 내가 그들을 다 모아볼게. 그 동안 김대리는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좀 만들어줘. 나도 고민을 해볼 테니.”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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