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90. 해외 출장(3)

마담 소피는 신팀장이 가져온 디자인 목업을 보고, 프랑스인 특유의 감성 풍부한 표정과 탄성으로 원더풀을 반복하며, 한국에서 제품이 출시되면 오히려 프랑스에서 수입을 하고 싶다는 말도 하였다. 이렇게 초반 좋은 분위기로 시작된 회의는 근 세 시간 동안, 향후 M&C 화장품의 전 세계 판권, 한국에서의 론칭 행사, 우수 대리점 사장들의 파리 여행지원, 그리고 파리 본사의 까다로운 COC(Code Of Conduct)의 완화 등 다양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COC란 글로벌 회사에서 전 세계 법인 및 라이센씨(Licensee)들에게 규정한 공통으로 지켜야 할 업무 규정으로써, 본사에서 브랜드와 디자인, 품질 등을 검사하고 통제하기 위한 까다로운 법규와 같은 것이다.


   
 “자, 그럼 제가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미셸리가 회의를 마무리하며 한국어와 불어를 오가며 말을 꺼냈다.

 “가장 민감한 문제였던 COC 완화 건은 전 세계 라이센씨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촉박한 제품개발 일정과 론칭 스케쥴로, 모든 제품의 사양과 광고들을 일일이 컨펌 받고 진행하기 어려우니, 일단 한국 측에서 먼저 진행하고 사후에 모든 견본을 파리로 보내는 것에 대해 마담 소피께서 합의하였습니다.” 
    
이 건이 신팀장 입장에서는 오늘 미팅을 하자고 한 가장 주된 이유였다. 이로써 그는 앞으로 매번 파리 본사 컨펌을 기다리지 않고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마담 소피의 배려에 깊이 감사를 하며, 꼭 가을 시즌에 맞춰 늦지 않게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병법36계에는 금적금왕(擒賊擒王)이란 전략이 나온다. 즉, 적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신팀장은 문득 과거 읽었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전출새(前出塞)’라는 시가 생각났다.
      
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기고 [挽弓當挽强]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 [用箭當用長]
사람을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射人先射馬]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아라 [擒賊先擒王]
    
금적금왕(擒賊擒王)이란 말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당나라 현종 때 안록산이 난을 일으켜 그 부하 장군 윤자기(尹子琦)가 수양성을 공격하였다. 윤자기는 13만 대군을 이끌고 수양성을 포위했으나, 수양성에는 군사가 고작 7천에 불과했었다. 수양성의 장순(張巡)은 일단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버티었지만 군량마저 바닥나서 성은 곧 함락될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그러다 갑자기 장순은 "사람을 잡으려면 말을 먼저 쏘고, 적을 잡으려면 적의 두목부터 잡아라((射人先射馬, 擒賊先擒王)"는 말이 생각나서, 유일한 돌파구로 적장 윤자기를 먼저 제거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저 수많은 적 가운데 적장 윤자기를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장순은 부하들에게 마른풀로 화살을 만들도록 지시하여 사격하게 하였다. 당연히 적들은 가짜 화살에 맞아 쓰러지지 않았다. 이에 적군 중 한 명이 건초 화살을 집어 들고 윤자기에게 가서 무릎을 끓고 수양성에 화살이 떨어졌다고 보고하는 모습을 장순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숨겨두었던 명사수들이 일제히 진짜 화살을 윤자기에게 날렸고, 그 가운데 한 대가 윤자기의 왼쪽 눈에 꽂히고 말았다. 이렇게 장수가 부상당해 쓰러져 적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장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총 출동하여 대승을 걷을 수가 있었다. 


      
매번 디자인 하나, 문구 하나에 까다롭게 구는 M&C 본사의 담당자들은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원칙만 있었고, 현실적인 사정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항상 파리에 일일이 보고할 수가 없었던 신팀장은 파리에서 수장인 마담 소피를 직접 만나서 얼굴도 익힐 겸 그녀와 담판을 짓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금적금왕(擒賊擒王)의 계는 성공을 하였다. 확실히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장수는 그 생각과 배포도 달랐다. 그는 이 기회에 마담 소피를 통해 리더의 품격을 배울 수도 있었으며, 이렇게 사람들과의 관계는 한번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야 더욱 돈독해지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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