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49. 사업개발팀(6)

그녀가 하는 사업이 바로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 또는 제품들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 수출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거나, 브랜드 라이센싱 계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회사와 회사를 연결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계약이 성사되어 수 년이 지나 종료될 때까지 불어가 능통하지 않는 아시아권 회사들을 위하여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창구역할도 하며 업무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더운 날씨는 상관없다는 듯이 베이지색 여름정장에 투명하게 비치는 넓은 스카프를 목부터 어깨까지 흘러내리게 조화시킨 파리에서 금방 넘어온 이 멋진 파리지엔느는 마치 내가 파리의 한 복판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불어가 튀어나올 듯 하였지만, 그녀는 매우 자연스럽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말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파리에 있는 쟝의 소개로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마침 한국에 올 일이 있었지만, 다른 일정 상 방문하긴 힘들었는데, 쟝의 간곡한 부탁도 있어서 일정 하나를 빼고 급히 오느라 미처 연락도 못 드리고 무작정 오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녀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어울리는 맑고 또렷한 목소리는 지쳐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한 순간 생기로 충만하게 채워주는 것 같았다. 평소 점잔을 빼며 뒤로 물러서는 경향의 송팀장 조차도 다른 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뛸 듯이 기뻐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봉쥬르, 미셸! 저도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스케쥴이 안 되신다고 해서 무척 안타까워했는데 이렇게라도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송팀장은 어리둥절해 있는 신대리와 조윤희에게 미셸리를 소개시켜주며 말했다.

“여기 조윤희씨도 프랑스권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습니다. 불어도 아주 잘하고요. 그리고 신대리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회사의 촉망 받는 인재이지요.”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신대리와 조윤희는 각각 악수를 하며 미셸리와 인사를 나눴다. 인사가 끝나고 프랑스식 에스프레소 만큼은 못하지만, 짙은 블랙커피 한잔이 준비되자 송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미 쟝을 통해 얘기를 전했지만, 지금 우리는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M&C의 라이센스 디렉터를 아무리 설득해도 얘기 자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론 미셸리께서 그 쪽과 연결해주실 수 있다고 하던데….”

“흠~, 솔직히 저도 잘 아는 사이는 아니어요. 그러나 제가 잘 아는 연결 선이 있어서, 만나게 되면 충분히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귀사에서 해외로 제품을 수출하지 않고 브랜드 이미지를 잘 유지할 수만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만나봐야만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이틀 후에 파리로 떠나니까, 다음 주에 약속해서 M&C 본사를 꼭 방문해 보겠습니다.”

신대리는 처음에 물에 빠졌다가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이었지만, 미셸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건 단순한 지푸라기가 아니라, 많은 지푸라기들로 굵게 엮어 만들어진 튼튼한 동아줄을 잡은 것 같은 확신을 느꼈다. 미팅 중에 신대리가 한국 화장품 시장 현황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설명하는 동안, 가끔씩 던지는 미셸리의 질문은 핵심을 찌를 정도로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이미 국내 여러 화장품 회사를 만나온 미셸리 또한 국내시장을 여러 국면에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셸리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신대리는 어떠한 머뭇거림도 없이, 지난 해에 만들었던 보고서를 보여주며, M&C 프로젝트가 회사에서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논리적이고 자신감 있게 설명하였다. 신대리의 긴 설명이 끝나자 미셸리는 또한 그에게 크게 감복하며 말하였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역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회사라 다르군요. 최근 많은 회사를 방문했지만, 지금처럼 논리적이고 명쾌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회사 소개서 좀 주시겠습니까?” 

처음엔 혹시나 하며 그냥 한번 친분관계 때문에 방문한 것이었지만, 미셸리의 마음도 어느 새 M&C 프로젝트에 매혹되고 말았다.
송팀장이 바로 대답했다.

“우리 회사 영문 소개서와 동영상 CD를 드리겠습니다. 혹시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네. 그리고 간단하게나마 비즈니스 플랜(Business Plan)을 준비할 수 있나요?”

미셸리의 질문에 송팀장은 순간 당혹스러웠다. 벌써부터 사업계획서를 요구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M&C 브랜드 도입이 확실하지 않아서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셸리께서 M&C에 방문하기 전까지 완성해서 저희가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송팀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신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대리 가능하겠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음주 월요일에 파리에서 받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대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대답하였지만, 아직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마음은 조마조마하였다. 결국 이번 주는 오랜만에 다시 야근과 특근으로 재무장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게 미셸리는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신대리는 마치 봄 날의 향기로운 꿈처럼 느껴졌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다. 사업개발팀원 모두는 그 동안의 모든 고민이 한 번에 풀린 것처럼 기뻐했다. 물론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더 많고 중요하며, 앞으로 어떤 결론이 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미셸리에게서 느껴지는 명쾌한 카리스마를 철저히 믿고 따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점심식사 후 박성준이 돌아오자, 사업개발팀원들은 그 날 오후 내내 사업계획 초안에 대해 장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모처럼의 뿌듯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회식도 가졌다. 비록 술을 못한다는 핑계로 송팀장이 식사 후 바로 돌아갔고 내일부터는 많은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대리는 일단 오늘은 잠시 모든 걸 잊고 동지들과 함께 오늘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신대리는 미셸리라는 뜻하지 않은 히든 카드가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만 같은 강한 확신에 들떠 있었다. 여기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조윤희라는 우군과 지금까지 성실히 자신을 도와주는 박성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매우 큰 행복감을 느꼈다.

- 계 속 -

* 사진은 미셸같은 파리의 마눌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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