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7. 갑작스런 인사발령(7)

물론 대학시절 그가 제일 흥미롭게 공부했던 것이 마케팅이었지만, 이 책은 뭔가 다른 것을 깨우쳐주는 것 같았다. 신대리는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희미한 길 하나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것이 명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늦은 밤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늘 읽은 마케팅 불변의 법칙과 그 동안 자신이 해왔던 영업활동들, 그리고 회사 마케팅부 사람들이 했던 전략들이 뒤엉켜, 그의 머리 속을 마구 헤집고 돌아다녔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수도 없이 집을 지었다 부수기를 여러 번, 결국 그는 거의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이른 새벽에 회사로 출근 하였다.

그는 아무도 없는 회사에 홀로 앉아, 첫 번째 법칙부터 다시 차근차근 회사 현황과 대비시켜 보았다. 화장품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전략을 따라 해왔던 그의 회사로써는 선도자의 법칙이 불가능해만 보였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성숙시장인 화장품 시장에서 최초로 뛰어들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도 보통은 아니라 생각되었다. 한 명, 두 명씩, 출근하는 동료들의 아침 인사와 함께, 마케팅 책을 들고 있는 그를 보고 벌써부터 마케팅 직원 다됐냐는 놀림 소리에, 그는 화들짝 책을 접고 깊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 날 하루는 인수인계를 위해 후임자와 함께 지난 일들을 설명도 하고, PC 안에 있는 업무파일들을 일일이 찾아보며 정리를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지만, 그의 머리 한구석엔 아침의 고민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신대리의 마음은 하루 종일 다른 곳에 가 있어서, 인수인계 과정에 여러 번 혼선을 일으키기도 했다. 보다 못한 그의 입사 동기인 임대리가 핀잔을 주었다.

“어이, 친구…, 마케팅 간다고 얼렁뚱땅 넘어 가려고 하는 것 아냐? 신대리, 정신차려!”

“어? 우리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미안해! 그러니까 대리점들의 채권관리는 대리점들의 담보 여신에 따른 외상매출금과 수금액을 매월 대조하여 정리해서 관리해야 하고, 영업부에서 넘어온 월말 재고액을 파악해서 재고 추이를 분석해 보면, 매월 대리점 사장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유용하지 않고 회사에 제대로 입금하고 있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야. 이건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예전보다 쉽게 정리할 수가 있는데...”

신대리는 얼굴이 붉어지며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부서를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수인계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인수인계가 잘못되면, 업무를 하다가도 전임자가 벌려 논 일 때문에 후임자가 큰 곤혹을 치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대리는 얼른 현실로 돌아와 인수인계에 열중하였다. 그렇게 인수인계의 바쁜 일정과 잦은 환송회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흘러갔다. 신대리는 처음 그의 머리 속을 어지럽게 휘저었던 마케팅에 대한 화두를 다시 돌이킬 기회조차 없었다. 결국 그는 마음 한 구석의 갈증을 풀지 못한 채, 무엇이든 일단 한 번 부딪쳐 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속 편하게 마음을 접어 버렸다.

그러나 그의 속도 모르고 다른 영업본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신대리에게 깊은 기대감을 표명하였다.
“신대리만 믿어, 마케팅 가서 영업할 맛 날 수 있도록 좋은 제품 만들고, 좋은 전략 만들어 봐. 뭐가 진짜 마케팅인지 본때를 보여 주라고….”

그는 겉으로는 걱정 말라며 호언장담 하였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 무거운 짐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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