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15. 시장조사 업무(2)

그는 하루 종일 보고서 양식을 이리저리 그려보며, 시장조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시장 흐름과 경쟁사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입수할 것인가’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이번 달의 경쟁사 판촉정책부터 파악해 보기로 하고, 일단 부딪쳐 보자는 마음에 다음 날부터 계속 화장품전문점들을 방문하였다. 그나마 영업지원부에 있을 때 알고 지냈던 매장들은 그의 질문에 친절히 답변해 주었지만, 그가 잘 모르는 곳에서는 짜증을 내거나 문전박대 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1주일 동안 꽤 여러 곳을 방문했지만, 기껏 5개 회사의 정보만 입수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화장품 매장마다 차이가 있어, 진정 이것이 전국적인 시장상황을 대변해줄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결국 그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 영업사원들이 했던 것을 취합하는 정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다른 경쟁사의 정보는 부실하지만, 회사 정책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그는 이 정도 수준으로 보고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느끼며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퇴근 후 답답한 마음에 3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 전 지하철 1호선 남영역 근처에 화장품전문점을 차린 문선배를 찾아갔다. 문선배는 영업대리 출신으로 신대리가 영업지원부에 있었을 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생각있는 영업직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영업부에 있으면서 이리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월급쟁이 영업으로는 큰 돈을 만질 수 없다는 생각에 잘나가던 강북영업부를 때려치우고,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 모아 목 좋은 남영역 옆에 어렵게 매장을 하나 열었다. 지금은 워낙 화장품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없어지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남영역 옆이 유동인구도 많은 화장품 매장으론 좋은 길목이라서, 그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화장품 영업 10년 동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는 것이라고는 화장품뿐이 없다며, 그는 화장품 장사꾼이나 될테니, 신대리에게 돈 많이 벌 수 있도록 회사에서 팍팍 좀 밀어 달라며 너스레를 떨고는 훌쩍 회사를 떠났던 선배였다. 그 후로 그는 때론 신대리의 시장정보원이 되기도 했고 때론 멘토가 되기도 하여, 이제는 개인적으로 형과 아우로 호칭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신대리는 개업씩 때 한번 방문하기는 했지만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가지도 못했다가 막상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게 미안하기도 하고, 빈손으로 들어가기가 쑥스럽기도 해서 근처 약국에서 드링크제 한 박스를 사 들고 매장문을 열었다. 퇴근 길 남영역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고, 작은 매장 안도 손님들로 매우 북적거렸다. 문선배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느라 여념이 없어서인지, 판매하는 아가씨만이 손님인 줄 알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신대리는 판매직원에게 미소로 인사하며 바로 카운터로 향했다.

“문사장님! 안녕하세요?”

그는 직원들 눈을 생각해서 깍듯하게 호칭을 붙이며 인사했다. 그제서야 신대리에게 눈길을 돌린 문선배가 바쁜 와중에도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쁘게 그를 맞았다.

“이야, 신대리, 어서 와! 바쁜데 어쩐 일이야?”

“뭐, 그냥 지나가다가 들렸어요.”

“그래? 근데 내가 지금 많이 바쁜데, 모처럼 손님도 많고, 가게 마감도 해야 하고…. 괜찮으면 좀 기다릴래? 내가 1시간 후면 좀 한가해질 것 같은데.”

“네 그럴게요. 가게도 좀 둘러보고, 신제품들도 좀 구경하고 그러죠.”

“그래 좀 둘러 보고 나서, 요기 뒤 창고 안에 소파가 하나 있으니까, 거기에서 좀 기다려줘.”

문 선배는 카운터 뒤 작은 문을 가리키며,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아참, 나도 이거 사왔는데, 냉장고에 뒀다가 나중에 직원들이랑 드세요”

신대리도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드링크제를 건낸 후, 매장을 둘러보려 했지만 워낙 혼잡해서 구경하기가 쉽지 않자 금방 포기하고 카운터 뒤 창고로 들어갔다.

비좁은 창고 벽에는 공장에서나 봄직한 앵글로 벽장을 대신하여 많은 제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반면, 바닥에는 온통 여러 회사에서 들어온 판촉물 박스와 카다로그 및 포스터 뭉치들이 뒹굴고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문득 옆 모퉁이에 오래 된 검은 소파가 보였다. 소파는 누가 버리고 간걸 주워온 듯이 겉껍질이 헤지고 갈라져서 누런 속살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었지만, 신대리는 개의치 않고 소파 위 어지럽게 널려있는 신문들을 치우고 털썩 주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