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집에 도착해서 자리를 두리번 거렸지만 강소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신대리는 주인 아줌마에게 반가운 인사를 던지며,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아, 평소 둘이 잘 먹던 곱창 구이 2인분을 주문하였다. 몇 분 안되어 강소장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신대리는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하였다.
“바쁘신 양반이 웬일이야?”
“그만 놀려라.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지 아냐? 나도 많이 힘들다.”
“그래 어쨌든 반갑다. 나는 야근하기 전에 이미 저녁 먹었는데, 저녁은 먹고 다니냐?”
“저녁 먹을 시간도 없다. 오늘도 원래 있던 약속이 깨져서, 겸사겸사 너 보려고 왔다.”
“그렇지 임마, 네가 웬일인가 했다. 결국 난 대타구나? 그래도 어쨌든 반갑고, 오랜만인데 일단 건배나 한잔 하자.”
그렇게 몇 잔의 술이 돌자, 강소장 얼굴은 금방 빨갛게 물들었다. 원래 강철의 사나이라 불릴 정도였는데, 곱창이 익기도 전에 빈 속에 소주부터 들이켜서인지 아니면 그 동안 많이 약해져서인지, 예전의 강소장 같지가 않았다.
“야~ 뭐가 그리 힘드니?”
강소장의 낌새가 여느 때와 다르다고 느꼈는지, 먼저 신대리가 말을 꺼냈다.
“네가 매월 보내주는 보고서 잘 보고 있다. 영업하는데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
강소장은 순간 주저하는 듯 하더니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 동안 신대리는 시장조사 보고서를 영업지점장 및 소장들에게 꾸준히 보내주고 있었다.
“뭐야? 자식, 딴 소리 하기는….”
“진짜야, 참 도움 많이 돼. 근데 말이야, 네 보고서…, 틀이 너무 똑 같더라. 좀 다른 방향으로 작성할 필요가 있겠어.”
“나도 알아. 나도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게 잘 안되네. 어차피 알아주는 놈들도 없는데,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 하기가 싫어지는 것 같아.”
신대리는 그렇잖아도 적지 않게 쌓여있던 불만을 털어놓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일 데로 쌓였던 참에, 그 동안 1년간 쌓여있던 불만을 허심탄회하게 말하였다. 오랜 친구란 이래서 좋은가 보다 하는 생각에, 그 동안 어느 곳에 하소연도 제대로 못했던 속마음을 남김 없이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같은 놈들은 일 안 하는 게 더 고역이지 않냐? 한 달의 반을 논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 나도 차라리 다시 영업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신대리, 그래서 말인데….”
강소장도 비로소 마음 속의 망설임을 떨쳐 버리고 고민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직영영업소에 큰 문제가 있어. 이거 말이야, 앞으로 1년만 더하면 회사 망하는 건 둘째 치고라도, 먼저 내가 망하게 생겼어.”
“뭐라고? 네가 왜 망해?”
신대리의 놀람에 찬 소리에 강소장은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 신대리를 찾은 이유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너 만나기까지 많이 망설였어. 오늘도 너와 얘기를 하려고 했다가 막상 널 만나니 차마 말하지 못하겠더라. 그런데 네 얘기를 먼저 들으니, 우리가, 아니 특히 네가 이렇게 가만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 너는 관심을 가지든 안 가지든 어쨌든 회사 경영진에게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는 놈이잖아. 우리회사가 계속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억지로 직영영업소를 증설하고 직원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시장을 타개할 방법이 없어. 우리도 이제 한계까지 왔어. 그런데 회사에서는 더욱 목표를 올리고 매출을 푸시(Push)하기만 하니….”
강소장은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잠시 말을 끊었다. 신대리도 아무 대꾸 없이 강소장을 따라 한 잔의 술을 목으로 넘겼다. 오늘따라 술이 유난히 더 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