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22. 시장조사 업무(9)

“안녕하십니까? 신대리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사실 여러 분들이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을 단지 보기 쉽게 정리한 것으로써, 우리회사가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주요 고객은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 먼저 안테나 매장을 통해 입수한 고객의 소리부터 들어 보시겠습니다.”

슬라이드를 한 장 한 장 넘겨 갈수록 그는 점점 더 자신감이 생기고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어느덧 안테나 매장에 대한 보고가 끝나고, 경쟁사 동향에 대한 설명으로 화면이 바뀌었을 때, 그의 심장의 두근거림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떨림은 없었으며, 그의 발표는 그 동안 안타까워 했던 회사의 문제점들을 확실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찼다.



“결국 우리회사의 문제점은 초저가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을 하고 있는 브랜드숍인 M사, M사를 벤치마크하였지만 자연주의를 표방하며 이미지를 굳혀나가는 F사의 놀라운 시장확대, 제주도의 청정 컨셉으로 이 시장에 뛰어든 A사 등에 비해 강력하고 뚜렷한 하나의 제품 컨셉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화장품전문점 시장에서도 시장의 리더인 A사와 비슷한 전략을 실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두업체의 막강한 신제품 출시 능력이나 광고물량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선두업체와 후발업체의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는 이런 상황을 스턱 인 더 미들(Stuck In The Middle)이라고 했습니다. 즉, 기업이 가격우위도 아니고 제품의 차별화로 경쟁우위를 차지하지도 못하는 가장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죠. 우리회사도 빨리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대리의 발표가 끝났을 때 한 순간 좌중은 참담하게 조용했으나, 이내 많은 박수 소리와 함께 신대리는 자리를 물러날 수가 있었다. 영업 동료들의 격려의 소리도 있었지만, 일부 마케팅 BM들의 불만에 찬 소리도 언뜻 들렸다. 하긴 그들이 그 동안 한 일에 대한 비판의 시간이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십분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한편 이팀장은 단순히 시장조사 현황만 보고할 줄 알았던 신대리가 주제 넘게 마케팅 전략을 신랄하게 비판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해 좌불안석이었으나 대놓고 내색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음 속에 이를 부드득 갈며 원한의 눈빛으로 신대리를 바라보았지만, 신대리는 이 프리젠테이션을 하라고 독려한 이팀장이 설마 자기에게 앙심을 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그는 이팀장이 자신을 격려해 주기 위해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주는 걸로만 알았지, 깊은 그의 속을 헤아릴 정도로 정치적인 사람이 못되었다.

그 날 오후 바로 장 시간의 대책회의가 열린 결과, 시장조사 기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시장조사 파트가 만들어지고 신대리에게 인원 두 명을 더 보강하기로 하였으며, BM들은 보고서 결과가 마케팅 전략 및 신제품 개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매월 피드백(Feedback)을 하기로 하는 한편, 내년 봄에 출시할 신 브랜드도 더욱 차별화할 수 있도록 전면 재검토 하게 되었다.

이렇게 신대리의 보고는 회사에 매우 큰 파급을 일으켰지만, 아직까지 신대리는 진정한 마케터라기 보다는 시장조사 담당자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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