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팀장! 내가 직원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겠다는데,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나? 설령 이게 개인적인 보고라 해도 그 정도 판단도 못한다면,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있겠나?”
갑작스럽게 사장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사장은 자신의 의도를 가로막으려는 이팀장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험악하게 그를 노려봤다.
“자 그러시지 마시고 어디 우리 신대리 얘기나 들어보시죠. 신대리 어서 보고하게나.”
최상무가 신대리에게 초점을 다시 돌리게끔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네, 그럼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 보고서는 물론 제가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1년 동안 안테나 매장을 통해 들어 온 우리 주요 고객의 의견을 정리하였으며, 안테나 매장이 한정된 표본수라 생각되어, 전국적으로 그 외 주요 화장품전문점들을 제가 수개월간 직접 방문 또는 전화를 통해 수집한 자료입니다. 이 속에는 비단 화장품전문점뿐만 아니라 지금 급부상하고 있는 브랜드숍을 방문해서 각각의 브랜드숍이 가지고 있는 컨셉과 제품구성을 분석하여..., 경쟁사 대비 우리회사의 현 전략을 비교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비록 저 개인이 한 일이겠지만, 그 내용은 감히 객관적인 조사에 의한 보고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신대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좌중을 돌아봤다. 모두들 보고서에 집중하고 있어서인지 그는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는 마른 입술을 살짝 적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먼저 고객의 소리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전문점에 대해서는 전국 대도시 중심으로 중대형 코너 100개점을 조사하였습니다. 조사결과 아미앙떼와 우리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브랜드에 대한 명확한 컨셉이 없다. 둘째 가격이 어중간하다. 셋째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잘 알려지지 않다 입니다. 이는 바로 기획 단계부터 브랜드의 차별화된 포지셔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된 것으로….”
신대리는 오랫동안 쌓였던 체증을 한 번에 다 토해내듯이, 그 동안 가슴속에 간직했던 못다한 얘기를 모두 쏟아내었다. 그에게는 노력의 결실인 정량적인 자료가 있었으며, 수 년 동안의 영업 경험과 시장조사 경력으로 다져진 시장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고, 회사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열정적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보고는 자신감과 확신에 차있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강한 설득력이 있어, 보고 내내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이상으로 우리회사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의 향후 방안은 아직 검증하지 못한 저와 제 후배 사원의 아이디어로 받아 주시고, 시간 나실 때 한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질문 있으시면 질문하여 주십시오.”
보고를 마쳤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신대리가 일견해 보니 이팀장과 김상무는 사장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고, 최상무는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 동안의 적막을 깬 사람은 역시 사장이었다.
“훌륭한 보고였네. 지금까지 이렇게 통계적 수치와 객관적인 관점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한 보고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군. 뭐라 다른 할말이 없지만, 신대리에게 한 가지 질문만 하고 싶은데, 앞서 아미앙떼가 기획 단계부터 포지셔닝이 잘못되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줄 수 있겠나?”
“네, 사장님. 아미앙떼는 처음부터 경쟁사와 차별화된 컨셉이 없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공법의 우수한 품질이라고 하지만, 이건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지 소비자가 보는 관점은 전혀 색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케팅의 관점은 항상 고객에게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은 제품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고객의 인식을 더욱 차지하기 위한 싸움인 것이죠. 그런데 이미 선두업체에서 같은 컨셉의 브랜드가 먼저 출시되었다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전략은 완벽한 Me-Too 전략뿐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30년 전통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부심과 더욱 우수한 품질이라고 주장하여도, 고객의 인식 속에 자리잡은 컨셉은 다르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후발주자처럼 파격적인 가격전략도 아니고 차별화된 제품 전략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 즉 Stuck In The Middle 상태라고 그 동안 수 차례 매월 정기보고서를 통해 보고 드린 바도 있습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