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91. 해외 출장(4)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어 일행은 근처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와인과 함께 프랑스식 식사를 하였다. 치즈 소스에 덮인 달팽이요리와, 난생 처음 먹어 보는 부드러운 프와그라가 곁들어진 스테이크 요리를 매우 맛있게 먹으며 파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특히 보르도 메독지방의 다소 드라이 하지만 깔끔한 풍취의 와인은 비교적 느끼한 프랑스 음식들을 상큼하게 돋구어줘 신팀장은 하나도 남김없이 음식을 깨끗이 비우고 말았다. 
   
  마담 소피와 헤어지고 미셸리는 신팀장과 민이사를 호텔에 내려주며 인사와 함께 피곤했던 하루를 마무리하듯 바로 뒤돌아 섰다. 신팀장은 호텔 회전문으로 들어서는 민이사를 바라보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미셸리를 바라보기를 반복하며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미셸리를 부르며 그녀를 따라 뛰어갔다.

  “미셸리 사장님~! 잠시만요~!”

  미셸리는 막 출발하려던 그녀의 BMW를 멈추고 고개를 내밀며 의아하다는 듯이 신팀장을 바라 보았다. 신팀장은 무작정 차문을 열고 그녀의 옆 자리에 올랐다.
     
  “웬 일이시죠?” 

  미셸리의 대답에 신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장님, 제가 오늘 파리에 처음 왔는데 하루 종일 회의만 하고, 그 유명한 파리의 한 구석조차 보지를 못했습니다. 피곤하시겠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에펠탑이라도 한번 구경시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셸리는 난처하다는 듯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기사에게 프랑스어로 뭐라 말하더니 기사를 돌려 보내고 특유의 낭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리세요. 그럼 내가 운전하며 파리 야경 투어를 해줄 테니, 함께 앞자리로 가시죠. 뒤보다는 앞이 더 보기 좋을거에요.”

  “네? 정말이요? 진짜 감사합니다~!”
        
  신팀장은 미셸리의 세심한 배려에 깊이 감사하며 자리에서 얼른 내려 BMW의 앞자리로 옮겨 탔다. 미셸리의 옆 좌석에서 BMW를 탄 것만해도 황홀한 지경이었는데, 신팀장의 눈 앞으로 지나가는 파리의 아름다운 야경은 그를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만 같았다. 신팀장과 미셸리는 에펠탑에서 내려 잠시 거닐며 수 많은 조명으로 잔뜩 장식한 아름다운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개선문을 거쳐 샹제리제 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잘 가는 BAR가 있는데 가서 와인 할까요?” 미셸리가 말했다.

  “술 드시면 운전 괜찮으시겠어요?”

  신팀장의 대답에 미셸리는 집이 바로 근처라 걸어가면 된다며 아는 BAR로 그를 안내하였다. 
  
  BAR에는 파리의 젊은 남녀로 왁자지껄했는데, 남자고 여자고 다들 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공기는 뿌옇고 자욱했지만 파리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에 매료된 신팀장은 오히려 이 조차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미셸리가 들어오자 이 곳의 몇 명이 그녀를 알아보고 프랑스 특유의 인사 방식으로 양 볼에 뽀뽀를 하며 인사를 하더니, 그 자리에 서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신팀장은 우두커니 서서 프랑스어로 프랑스인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 푸른 눈의 프랑스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더 그녀가 경외스럽게 느껴졌다. 
      
  얘기를 마친 미셸리는 신팀장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와 함께 구석진 자리로 그를 능숙하게 인도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 와인과 간단한 치즈와 크래커를 시켰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렇게 까지 신경 안 써주셔도 되는데…”

  “음…. 근데, 신팀장님! 그 사장님 소리 좀 안 하면 안 되나요? 내가 듣기가 좀 거북하네요?”

  “그래도 사장님 아니십니까? 어떻게…, 그렇다고 누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요…. 하하~” 
  신팀장의 농담에 미셸리도 살짝 소리를 내어 웃었다.  

  “호호~ 그 냥 우리 한 살 차이뿐이 안되니 편하게 이름 불러줘요. 미셸이라고….”

  “아…. 네~! 미셸~~ 하하~”
       
  신팀장은 처음엔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약간 어색하기만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와인을 몇 잔 마시면서 점차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미셸이 어린 시절 외교관인 아빠를 따라 아프리카, 미국, 프랑스 등을 이사 다니며 살게 된 얘기에서 시작해서, 한국 남자는 너무 무뚝뚝하고 여자를 위할 줄 모른다며 프랑스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는 등 개인적인 얘기도 듣게 됐다. 
   
  어느 새 한 병을 다 비우자 미셸은 다른 종류의 와인으로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앞에 마신 것은 쉬라즈 종류로써 맛이 부드럽고 그윽했던 반면, 이번에 주문한 것은 까베르네쇼비뇽 종류로써 바디가 매우 단단하고 강한 향이 입 전체를 자극하는 게, 소주에 단련된 신팀장에겐 더욱 입에 맞는 와인이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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