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37. 마케팅 전략 조사보고(8)

“넌 아직도 가치부전의 진정한 뜻을 모르는구나? 거짓 가(假). 어리석을 치(癡). 아닐 불(不). 미칠 전(癲), 즉, 바보인 척은 하되 미치지는 말라는 것이잖아. 내가 그 유래까지는 자세히 설명 안 한 것 같으니 잘 들어봐. 삼국지에서 조조가 세운 위(魏)나라 알지? 거기에 제갈공명에 비길만한 사마중달이 있었는데, 노년에는 왕족인 조상(曹爽)이 그의 힘을 두려워하여 실권도 없는 지위로 내쫓아 버려서, 그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게 되었어.

그래도 사마중달의 행동을 수상이 여긴 조상은 부하에게 병문안을 가서 사마중달을 살펴오라고 하였는데, 가보니 그는 옷도 엉터리로 입고, 죽을 먹을 때도 질질 흘리며, 완전 정신이 나간 것같이 행동한 거야. 이것을 본 부하들은 정말 정신이 나간 것으로 알고 조상에게 본대로 보고를 해서 적을 방심시킬 수 있게 되었지. 그러면서 사마중달은 사전에 자신을 도울 사람을 포섭하고 군사를 정비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잡게 되어, 결국 그 유명한 삼국지의 조조가 세운 위나라도 망하게 된 것이야. 즉, 때를 기디리기만 하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준비하면서, 우리를 도와 줄 사람도 포섭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알겠냐?”

“아~ 네네~, 알겠습니다요. 아무튼 대리님 말빨에는 못 당한다니까요? 그렇다고 진짜로 지대리님 미인계에는 넘어가지 마세요.”

박성준은 다시 한번 신대리에게 농담을 던지며, 늦도록 또 고사성어 이야기가 계속 될까 겁난다는 듯이 얼른 말을 넘겨버렸다.

지대리는 신대리보다 한 살 위의 나이로 명문대 영문과를 나와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하는 인재였으나, 외국인 손님이 많은 사장의 통역 겸 비서로 낙찰되어 아쉽게도 더 이상 꿈의 나래를 펴지 못한 채 비서로 발이 묶여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점점 살도 찌게 되어 지금은 비교적 통통한 몸이 되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꽤 아름다운 여성이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다 작년에 그녀는 모든 임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하는 신대리의 당당하고 자신에 찬 모습에 반하여, 그녀도 언젠가 비서에서 벗어나 그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다시 한번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점점 할 일 없이 나태해져 가는 그를 바라보며, 그녀의 꿈도 무너지는 듯한 안타까운 마음에 참다 못해 그에게 먼저 연락을 취한 것이 두 달 전이었다.

처음에 신대리는 지대리에게도 짐짓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거짓으로 대하였으나, 점점 회사와 그를 염려하는 그녀의 열정이 진심임을 알게 되었으며, 여러 임원들을 접하는 그녀가 매우 필요한 존재라는 것도 퍼뜩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그 후로는 반대로 신대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그녀를 만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솔직히 밝히고,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녀 또한 회사를 바꾸려는 그의 헌신과 노력에 찬사를 보내며, 적극 동참하여 사장과 여러 임원들의 동정을 그에게 수시로 레포트 해주며 그를 도와주게 된 것이다.

“이젠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어. 그런데 잘못되면 어쩌면 우린 회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 다는 것은 알지?”

신대리의 물음에 박성준은 변함없는 믿음을 그에게 보내왔다.

“잘 알아요. 어차피 우리의 노력을 회사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이런 회사 있을 필요도 없어요. 한시라도 일찍 다른 곳을 찾아 보는 게 우리 미래에 더 좋을지도 모르죠.”

“자식…, 그래, 고맙다. 우리 죽어도 같이 죽고, 다행히 살게 되면 끝까지 함께 가보자.”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두 사람은 층별로 담당 구역을 나눠 보고서를 배포한 후, 근처 호프 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간단히 하며 그간의 노고를 스스로 위안한 후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대리는 강소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간 통화도 자주 못하고 지냈던 터라, 갑자기 보고서가 완성되었다는 말에 강소장은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겠다고 하였지만, 신대리는 내일이 중요한 날이라 오늘은 술을 더 마시기도 그래서 그냥 집에 들어가겠다는 말로 미안함을 표하며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11시가 이미 넘었을 때였다. 그는 캔맥주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단숨에 들이켰다. 결전의 날이 곧 다가오고 있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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