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81. 마케팅 팀장이 되다(9)

그러던 어느 날, 서대리는 큰 스케치북을 들고 와서 스케치북을 불쑥 내밀며 말했다.
  “난 이 디자인이 매우 슬림(Slim)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가 봐도 여성의 손안에 쏙 들어오면서, 보기만 해도 막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겠어요. 그래서 몇 가지 안을 스케치 해봤어요.”
      
  스케치북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색조제품에 대한 서대리의 생각들이 여러 가지로 무질서하게 그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도대체 뭘 봐야 할지 모르며 어리둥절해 하자 서대리는 몇 가지를 짚으며 설명을 하였다.
     
  “타사의 일반적인 색조제품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너무나 흔하고 용기도 큽니다. 그래서 저는 그 틀을 깨려고 합니다. 저는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단순한 것은 잘못하면 싸구려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외국 유명 브랜드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데, 우리나라 것은 왠지 촌스러워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슬림한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얇아야 해요. 
     
그렇다고 화장품 특성상 모두 슬림하게 할 수도 없고 해서, 겉보기에 얇게 보이는 거지 실제로 얇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는 눈의 착시를 이용하자는 거죠. 사람의 눈이 일반적으로 아래로 내려다 보니까 사람의 시선이 제일 먼저 닿는 부분에서 감각적이고 슬림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죠. 그럼 실물보다 제품이 슬림해 보일 겁니다. 


    
기초화장품도 마찬가지에요. 유리용기보다는 플라스틱 블로우용기를 쓰고 비정형적인 곡선을 활용하여 디자인적인 액센트를 주는 거죠. 그럼 사람들은 그쪽에 시선이 꽂히며 실제보다 다른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이미지의 왜곡을 고객의 인식 속에 넣는 것이죠.”
    
  디자인에 대한 서대리의 생각은 확실히 남달랐다. 서대리가 추구하려는 방향은 신팀장이 보기에도 바로 그거다 할 정도였다. 서대리의 열띤 설명에 신팀장은 매우 흡족하여, 그녀의 설명을 차마 끊지 못하고 기다렸다가 마침내 한마디 얘기할 수가 있었다.
      
  “나도 서대리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김대리, 개발부에서 이런 디자인 개발하기 어렵지는 않나요?" 
  그렇잖아도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김대리는 신대리의 질문에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신중하게 대답을 하였다.
  "아직 구체적인 디자인도 아니라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제 생각에 오히려 심플하기 때문에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번 해보는 게 좋겠네요."

  김대리의 의견에 모두들 환하게 웃으며, 일을 한 단계 진일보 해나갈 수가 있었다.
           
  TFT에서는 다른 한편으로 M&C 브랜드에 대한 컨셉도 재정립하였다. 국내에서 이미 형성된 M&C의 브랜드 이미지는 지성미, 세련, 여성스러움, 프랑스, 파리, 패션(Fashion), 고급감, 이국적, 고가 등이었지만, 새로이 형성해야 할 M&C 화장품의 이미지는 생동감, 활력, 부드러움, 투명감, 깨끗함, 감각적, 감성적, 모던함 등으로 나타났다. 이건 어찌 보면 모험이었지만, TFT 멤버들 모두 이런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에 이구동성 찬성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서대리의 디자인은 새로운 컨셉에 매우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M&C의 컨셉과 포지셔닝(Positioning)이 결정되었는데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파리감성의 패션 화장품”이란 주 컨셉을 전달하기 위해 심플한 여백의 미가 아름다운 과감한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디자인 방향과, 색조제품은 젊은 층에 맞는 화사하고 다양한 칼라로 한듯 안 한듯 가볍고 투명한 누드(Nude) 타입의 베이스 메이크업(Base Make-up)과 펄을 사용하는 샤이니 스타일의 포인트 메이크업(Point Make-up)을 통해 젊은 직장여성의 내추럴한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하며, 기초화장품은 끈적이지 않고 빨리 스며드며 사용감이 가벼운 타입의 내용물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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