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56. 사업개발부(13)

2주가 지나도록 미셸리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그 동안 사업개발팀 네 명은 일이 잘 안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애만 태우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송팀장은 미셸리에게 몇 번 연락을 취했지만, 그녀가 계속 외근 및 출장으로 사무실에 없다는 비서의 되풀이 되는 대답뿐이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5월이 하염없이 지나고 6월의 첫 번째 월요일 아침, 송팀장은 출근하자마자 습관처럼 이메일부터 체크하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받은메일함에는 점점 증가하는 스팸 메일들이 그의 눈과 머리를 어지럽혀 왔다. 그는 따분히 화면을 넘겨 가며, 혹여나 그 중에 뭐 하나라도 건져 볼만한 게 있나, 두꺼운 뿔테 안경 속 졸린 눈에 힘을 주어 갔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수 많은 한글 제목들 속에 파묻혀 있는 불어 메일 하나를 발견하였으니, 바로 미셸리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 메일은 마치 진흙 속의 진주처럼 유난히 도드라지게 눈에 띄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송팀장은 바로 메일을 열어보고는 큰 기쁨에 “Yes, Oh~ yes”를 외쳤다. 세 사람이 뭔 일인지 의아해 하며 송팀장을 바라보자 송팀장은 이내 세 사람에게 말했다.

“미셸리에게서 드디어 메일이 왔어요. 1주 전에 미팅을 했는데, 답신이 이제야 왔다고 하네요. 그리고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랍니다.”

“야호~!”

세 사람은 뛸 듯이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긴 기다림에 지쳐 목말라 있던 그들에게, 미셸리의 소식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팀장님, 긍정적이라 함은 어떤 것입니까?”

신대리의 질문에 갑자기 좌중이 조용해지며 모든 눈이 송팀장에게 쏠렸다.

“자 여기 회의 탁자로 모두 와 보세요.”

모두들 원형 탁자에 자리를 잡자 송팀장이 말을 이었다.

“일단 M&C에서 화장품 라이센스에 대해서 OK를 했으며, 우리가 보낸 사업계획서도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미셸리가 이미 작년에 M&C 화장품이 일본에서 출시되었다는 것을 알고 잘 설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장상황 분석과 적극적인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 정도 입니다. 앞으로 계약 조건에 대한 협의가 남았는데, 아무래도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한 고비가 되겠어요.”

“팀장님 제가 이런 브랜드 도입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데, 앞으로 우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신대리가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에 답답해하며 질문하였다.
“앞으로 M&C와 도입 조건에 대한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지루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특히 로열티(Royalty)와 최소 매출액, 그리고 계약 기간 등에 대한 것을 감안한 보다 세부적인 사업계획서가 다시 작성되어야 할 겁니다. 지난 번에 보낸 것이 드래프트 비즈니스 프로포절(Draft Business Proposal)이었다면, 이젠 세부적인 액션 플랜(Action Plan)이 포함된 마케팅 프로포절을 작성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 우리회사가 요구하는 딜 텀(Deal Term : 계약 조건)을 제시하면, M&C는 이를 검토한 후에 그들의 요구조건을 보내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가져올 수 있도록 협상을 해야죠.”

송팀장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아직 잘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신대리가 계속 질문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는 세부 실행계획을 만들고 우리의 로열티 조건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겠네요?”

“일단 우리가 보낸 프로포절에 대해 M&C에서 원하는 조건이 있을 겁니다. M&C는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를 라이센스-아웃(License-out)하는 회사이니까, 나름대로 짜여진 방식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미셸리에게 그쪽의 요구 조건이 무엇인지 물어볼 테니, 좀 기다려 봅시다. 아무래도 파리는 지금 한 밤 중이니 오늘 저녁에나 통화할 수 있겠네요.”

일단 자리로 돌아온 신대리는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른 채 무조건 송팀장에게 일을 맡길 수만 없다는 생각에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서점에서도 참고할만한 책을 발견하지 못한 신대리는 현재로서 이런 일에 대해서 가장 잘아는 송팀장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허탈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뜻 밖에도 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신대리가 들어오자 송팀장은 영어로 인쇄된 파일을 하나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내가 외국계 회사에 있을 때, 라이센스-인 앤 아웃(License-in/out)했던 자료들이니까, 신대리가 한번 읽어보고 앞으로 일을 준비해 보세요.”

송팀장은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일을 신대리에게 넘겼다. 신대리로서는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자, 동시에 일을 남의 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던 대로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송팀장이 준 파일은 외국계 회사 사업개발팀의 업무 매뉴얼과 진행했던 사례들이었다. 영어로 된 자료라 읽기 어려움이 많아 다 읽고 정리하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신대리는 송팀장이 자주 사용했던 용어정의와 중요한 업무에 대해 차근히 정리를 하였고, 이를 M&C의 경우로 대비해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송팀장은 계속 미셸리와 연락을 취했지만, M&C에서 제시하는 조건은 좀 더 기다려 봐야 한다는 대답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8월이면 한 달간 바캉스를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전에는 꼭 기본적인 계약사항이 결정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사업개발부 직원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하여 추가로 진행하고 있던 남성용 브랜드 도입에 대한 검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 계 속 -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