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신대리는 민이사의 부름에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그 짧은 한마디 속에도 변함없는 민이사의 활기와 자신감을 느낀 신대리는 더욱 기가 죽는 것만 같았다.
“찾으셨습니까?”
문가에서 쭈삣거리는 신대리를 보고 민이사는 말했다.
“어! 신대리, 어서 와. 이리 와서 앉지 그래?”
신대리는 민이사 책상 앞 회의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 앞에서 의자에 앉기까지의 극히 짧은 시간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신대리의 심장은 더욱 요동치고 입술은 바짝 말라만 갔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신대리는 속으로 깊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신대리, 지난 번에 같이 어울리지 않고 그냥 그렇게 가서 좀 서운했어?”
의외로 다정스런 민이사의 말에 신대리는 뭐라 할말이 없어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내가 요즘 너무 경황이 없어서, 신대리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렇잖아도 사장님께서 신대리 얘기를 하며 예전에 신대리가 만들었던 보고서를 읽어보라고 주셨는데, 여태 못 읽었다가 오늘 아침에야 읽어보게 되었지 뭐야? 그런데 말이야….”
민이사는 잠시 말을 끊고는 머그컵에 가득 차있는 아메리카노 블랙 커피를 크게 한 모금 마셨다.
“사실, 이거 보고 난 좀 놀랐어. 지난 2주 동안 업무보고와 면담들을 통해 지금 마케팅 직원들에게 제일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대리 보고서에 있더군. 신대리는 그게 뭐라고 생각하나?”
민이사는 원래 말투가 그런지, 처음부터 거침없이 반말을 하였다. 원래부터 팀장이든 임원이든 상관없이 그의 상사가 아니면 모든 사람들에 반말로 얘기하는 통에 여러 사람들에게 건방지고 버릇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이미 전 부서에 퍼진지 오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반말이 더욱 친근하게만 느껴진 신대리는 점점 안도감을 느끼며, 그의 말에 집중하며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다 뜻밖의 질문에 신대리는 바로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안정감을 찾고는 대답했다.
“시장을 보는 눈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신대리의 대답에 민이사는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말하였다.
“아니야, 그건 다른 직원들도 부족하지만 그간 경험을 통해 다들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
민이사는 의미심장한 말로 신대리가 뭔가 다른 답을 하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말을 잠시 멈추었다. 민이사의 작은 안경 넘어 날카로운 눈빛이 신대리의 속마음을 꾀 뚫어 보듯이 반짝였다. 그리고는 신대리가 미처 응답을 하기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에겐 두 가지가 없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Passion, 열정이야. 그들에겐 목숨 걸고 일을 만들어내겠다는 열정이 안 보여. 그저 주어진 일에 마지못해 순응하는 어린 양들 같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이야. 마케터라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내 이루어 내려는 악착스런 것이 있어야 하는데, 다들 온실 속의 화초들 같아. 그래서 나는 이 조직이 이렇게 형편없어졌구나 하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내가 사장님께 들은 신대리에 대한 얘기와 이제 자네 보고서를 보니, 그 두 가지가 모두 떠오르는 거야. 순간 난 무릎을 탁 쳤지. 왠지 알아? 난 뭐랄까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았거든. 그래서 난 지금부터 신대리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은데, 오늘 오전은 내 바쁜 시간을 신대리에게 다 내줄 수도 있으니, 그간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모두 해주길 바래. 나는 이제부터 듣기만 하겠으니 말이야.”
신대리는 마른 입술을 한 번 훔치고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잠시 생각을 하다, 자신이 처음 시장조사를 하여 임원진들에게 보고를 하여 김상무가 떠나고, 그 때문에 지금 이팀장과 심각한 갈등이 있다는 등의 개인 사정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현 화장품 시장현황과 M&C를 도입하게 된 배경, 그리고 M&C가 일등 브랜드가 되고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브랜드숍을 하는 것이 미래의 비젼임을 세세하게 설명하였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