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42. 마케팅 전략 조사보고(13)

자리로 돌아오자 마자 이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신대리는 이팀장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이젠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회사를 떠날 각오로 저지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팀장의 한바탕 소란 중에 이번에는 김상무 방으로 불려갔다. 신대리는 똑 같은 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야 했다. 그들은 위아래도 못 알아 보는 조직의 암적인 존재로 그를 몰아 부쳤다. 점심식사 시간 내내 식사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이 퍼붓는 욕을 신대리는 받아 넘겨야만 했다. 그러던 한 순간 김상무도 이제 지쳤는지, 잠시 말을 끊었고 일순 침묵이 방안에 가득 잠겼다. 신대리가 어색한 정막을 깨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더 이상 전 직장에서처럼 도망치듯 회사를 떠났던 겁장이가 아니었다.

“팀장님, 상무님. 저는 오늘과 같은 보고를 1년 동안 매월 올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린 보고는 위로 올라가면서 누락되고 왜곡되어 왔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진정 회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같은 암적인 존재를 수술해서 도려내시겠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미 저는 각오하고 한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두 분께 진정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손자병법에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에 이겨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임금의 명령이라도 어겨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하실 말씀 없으면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식사하고 2시에 있는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대리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많은 직원들의 눈이 그의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을 뒤로한 채 박성준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매우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그 동안의 근심 걱정을 날려버린 안도감 때문인지 허기가 몰려왔다. 한번 더 남은 오후 임원진 회의에서 마지막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서, 마치 군인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밥을 배불리 먹듯이, 그는 설렁탕에 밥 두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그에게는 여느 때보다 자신이 넘쳐 흘렀다.



오전에 이미 사장님께 보고를 마치면서 자신의 의견을 숨김없이 발표했던 터라, 신대리는 이미 오후 임원진 회의 때 발표할 프레젠테이션의 시나리오를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그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임원진 회의에서의 발표는 더욱 힘이 있었다. 오전과는 달리 마지막 결론에 그는 새로운 브랜드 전략안도 함께 발표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회사는 숨기고 외국 유명 브랜드를 라이센스(License) 해와서 고급 이미지의 브랜드숍으로 승부하자는 역발상적인 전략이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은 백화점과 방문판매의 고가 명품 브랜드와 화장품전문점의 중가 국내 브랜드로 대변될 정도로 완전히 이분되어 왔다가, 최근 브랜드숍에서 초저가 화장품을 출시하며 화장품전문점 시장을 완전히 풍지박산을 만들어놨다. 그러자 브랜드숍은 화장품업계의 이단아와 같은 저가 화장품이 아니면 안 되는 시장이었다. 그런데 브랜드숍에서 고급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이미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신대리는 이점을 역발상한 것이다.

상대방이 너무 강하면 때론 완전히 정반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햄버거 회사인 버거킹도 처음엔 강력한 선두업체 맥도날드를 따라 하였다. 그러나 버거킹은 맥도날드의 체계적인 교육과 관리 시스템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자, 자기다움, 즉 새로운 컨셉을 찾기 위해 맥도날드의 장점에 정반대되는 점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맥도날드의 강점인 전국 어디에서나 제공되는 똑 같은 품질의 똑 같은 맛에 대항하여, 버거킹은 반대로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주문을 하면 일일이 햄버거 토핑을 바꿔주는 전략을 펼쳤다. 그래서 탄생한 ‘Have it your way(여러분 방식으로 먹으세요)’ 캠페인은 버거킹을 세계적인 햄버거 회사로 자리잡게 해 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대리는 브랜드숍의 저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외국의 유명 브랜드를 라이센스 해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미 유명 화장품은 국내에 거의 들어온 상태니까, 화장품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유명 패션(Fashion) 브랜드를 찾아서, 브랜드만 들여와서 국내에서 화장품으로 개발, 생산, 판매하는 형태였다. 계속되는 가격 전쟁에서 후발주자인 회사가 뼈를 깎는 가격 싸움에 끼지 않고 브랜드로 승부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브랜드숍 내에서도 또 다르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동안의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 회사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이는 국내 맥주전쟁에서 과거 조선맥주라는 회사 이름을 철저히 숨기고 천연 암반수라는 컨셉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여 1등 브랜드로 성공한 하이트 브랜드의 사례를 벤치마크(Benchmark)한 것이기도 했다. 하이트 맥주의 성공으로 조선맥주는 회사이름도 하이트 맥주라고 바꾸지 않았던가?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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