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은 신대리의 질문을 짧게 받아 회피하며, 지금 그녀에게 할당된 내용을 시간 내에 빨리 전달해 줘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계속 진도를 나갔다. “그래서 여러 조사를 통해 우리를 둘러 싼 환경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해요. 환경에는 외부환경과 내부환경이 있는데, 먼저 외부환경이란 특정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거시환경과, 제품이 속한 산업 내 고객의 트렌드, 경쟁사 현황, 기술의 변화 등의 산업환경이 있지요. 이런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업은 위협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시장의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답니다. 또한 내부환경은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력, 기술력, 유통력, 마케팅력, 인적자원 등의 내부적 역량이 산업 내에서 경쟁사에 비해 차지하고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기업은 스스로를 분석해서 경쟁사 대비 강점과 약점이 무엇이고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내/외부 환경분석을 통한 내부 역량의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 외부환경의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을 분석함으로써,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기존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
2005년 11월의 첫 번째 월요일 아침. 신대리는 영업부가 있는 2층을 지나 6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왠지 모르게 처음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바로 올라가기가 싫었다. 6층 초입에 있는 자재부를 지나서 복도 왼쪽, 마케팅부라는 작은 명패가 붙어있는 문은 마치 난공불락처럼 굳게 잠겨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옷 매무새를 고치고 큰 호흡을 한 번 하고 난 후, 용기를 내어 문을 활짝 열었다. 앞으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마케팅이라는 신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는 업무적으로 마케팅부원들과 자주 부딪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그리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영업지원부에 있을 때도 회의 시간에 격한 논쟁을 하게 되면 각 자의 입장이 틀린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며, 어쩌다 심한 말이 오고 갔을 때면 퇴근 후 한잔의 술로 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첫 출근 날 생각지도 않은 그들의 환한 반김에 그간의 걱정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 일주일 간 OJT(On the Job Training)의 일환으로 각 BM(Brand Manager)별로 매일 이루어진 브랜드별 제품교육 및 시장현황에 대한
물론 대학시절 그가 제일 흥미롭게 공부했던 것이 마케팅이었지만, 이 책은 뭔가 다른 것을 깨우쳐주는 것 같았다. 신대리는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희미한 길 하나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것이 명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늦은 밤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늘 읽은 마케팅 불변의 법칙과 그 동안 자신이 해왔던 영업활동들, 그리고 회사 마케팅부 사람들이 했던 전략들이 뒤엉켜, 그의 머리 속을 마구 헤집고 돌아다녔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수도 없이 집을 지었다 부수기를 여러 번, 결국 그는 거의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이른 새벽에 회사로 출근 하였다. 그는 아무도 없는 회사에 홀로 앉아, 첫 번째 법칙부터 다시 차근차근 회사 현황과 대비시켜 보았다. 화장품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전략을 따라 해왔던 그의 회사로써는 선도자의 법칙이 불가능해만 보였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성숙시장인 화장품 시장에서 최초로 뛰어들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도 보통은 아니라 생각되었다. 한 명, 두 명씩, 출근하는 동료들의 아침 인사와 함께, 마케팅 책을 들고 있는 그를 보고 벌써부터 마케팅 직원 다됐냐는 놀림 소리에, 그는
하지만 누구나 최초가 되기는 어렵다. 어느 영역에 최초로 들어간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최초로 뛰어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이어진 '영역의 법칙'이다. 그렇다면 큰 연못 속의 작은 고기가 되는 것보다 작은 연못 속의 큰 고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사람들은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16번째인 링컨 대통령을 기억한다. 그 이유는 링컨이 노예를 해방한 첫 번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바로 세분화된 시장에서 첫 번째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 최초로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영역에서든 선도적 브랜드는 거의 대부분이 고객의 기억 속에 맨 처음 자리잡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최초가 되기 위해 신제품을 시장에 먼저 출시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기억 속에 맨 먼저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 '기억의 법칙'이 시작됐다. 과거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동쪽으로 계속 가면 동양이 나올 것이라 믿고 동쪽으로 항해를 떠났다. 그러다 도착한 대륙이 신대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는 그곳이 동양인 인도라고 믿었다. 덕분에 그 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이번 정거장은 , 가라뫼, 가라뫼입니다. 다음은….” 버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 소리에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그는 여기가 어딘가 하며 차창 밖을 두리번거렸다. 집까지는 아직 몇 정거장이 더 남았다. 잠시 졸았기 때문인지, 살짝 열어둔 창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문득 한기가 느껴져 왔다. 그는 얼른 창문을 닫으며, 다시 한번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난 듯 지난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멀미에 뒤틀렸던 속도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러자 비로소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다시 한번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다음 주부터는 마케팅부에서 일해야 하는데…, 어쩌지?’ 그는 자신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뭐라도 하나 해야겠다는 심정에 집보다 몇 정거장 떨어진 화정역 앞에서 얼른 내려, 동네 비교적 큰 서점으로 달려갔다. 마케팅 책이라도 한 권 사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마케팅, 브랜드, 전략, 포지셔닝, 기획 등 마케팅 용어로 치장된 수 많은 책들이 넓은 코너를 장식하고 있었다. 한 순간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며, 한편으론 그 동안 너무 책을 읽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며, 그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카
그래서 그는 영업부에서 만큼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았다. 만 3 년동안 주말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온 몸을 바친 결과 남다른 성과도 올렸으며, 선배 및 동기들과 어려움을 극복했던 노력과 경험,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희열과 성취감 등이 그를 어느새 열정적인 영업사원으로 변신시켰다. 무엇보다도 그는 영업을 하며, 잘 몰랐던 거래관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쌓고, 가장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적관계를 두텁게 할 수 있어 영업이 점점 더 좋아졌다. 이렇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영업이 바로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앞으로도 계속 전문 프로 세일즈맨으로 성공하고, 언젠가는 돈을 모아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꿈도 꾸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직장상사인 허지점장과의 말다툼 끝에, 참을 수 없는 젊은 혈기로 사표를 내던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건 일순간의 섣부른 감정이 아니었다. 대기업 조직의 수직적 명령체계와 상급자의 개인적이고 부당한 요구에 대한 누적된 항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지울 수 없는 자욱이 되어 남아있었다.그 후 백수시절의 방황이 6개월 간이나
어느덧 봄도 지나고 학교에는 또 다시 축제가 무르익어 가는 5월, 그는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깨기 위해 시끌벅적한 교정을 거닐며, 나름 한가로운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그러나 캠퍼스 곳곳에 퍼지는 웃음소리와 한껏 젊음을 발산하는 후배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 그의 굳은 입술 사이에도 한숨이 절로 베어 나왔다. ‘이러다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휴~, 부모님께 더 이상 손 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학 갈 형편도 아닌데…, 지금이라도 발벗고 나서서 취직자리를 찾아야 하나?’ 그는 이런저런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캠퍼스 구석구석을 꽤 많이 걸어 다녔는지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학생회관에 들어서자 그는 두리번거리며 어딘가 앉을 자리를 찾다가, 마침내 이미 여러 학생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너저분하게 신문들이 널려있는 자리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는 구석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신문 하나를 주어 들었는데, 다 그렇고 그런 따분한 얘기로 채워진 학교 신문이었다. 신문 머리글자만 일견 흩어 본 그는 따분함에 신문을 접으며 탁자에 던져 놓는 순간, 문득 광고 하나가 그의 눈을 사로 잡았다. [ 신입사원 모집 - L전자 ] 졸
머리가 아파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무척 한산했다. 버스 뒤쪽 빈 자리에 신대리는 몸을 던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버스가 몇 정거장을 지나도록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차창 밖만 내다봤다. 어느덧, 어두워진 거리에는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더니, 한 순간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마치 강렬한 빛으로 변해 그의 눈 앞으로 쏟아지듯 달려왔다. 순간 그는 아찔함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몰려오는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을 참으며 그는 간신히 창문을 조금 열었다. 가을 저녁 신선한 공기가 폐 속 깊이 찔러 들어오자 어느덧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가시는 것 같았다. 그는 용기를 내어 눈을 다시 창 밖으로 돌렸다. 차 창가를 휙휙 지나가는 가로수 넘어 상가 간판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이며, IMF시절 어렵게 취업을 준비했던 당시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대리는 IMF 환란이 기승을 부리던 세기말의 어둠 속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당시는 수십 년간 회사를 위해 목숨 바쳐 일했던 간부들이 거리로 내쫒기고, 수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나서 대한민국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었던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