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중국 9개 도시 20개 가정을 방문한 트렌드랩506 이정민 대표. 그들의 화장대에는 당연히 설화수, 후 등 K-뷰티나 글로벌 브랜드로 가득일 줄 알았다. 그러나 20개 화장대를 둘러본 이정민 대표에게 예상치 못한 불안함이 엄습했다. 화장대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국 로컬 브랜드가 즐비했다. 또 색조 메이크업에 대한 중국인의 갈증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이정민 대표는 속으로 곱씹었다. “뭔가 이상하다. 중국에서 K-뷰티는 괜찮을까? 아닌 것 같다.”
지난 11월 2일 트렌드랩506과 메저차이나가 공동 주최한 ‘2018 차이나 뷰티 마켓 트렌드’ 세미나의 주제가 ‘K–뷰티만 모르는 넥스트 차이나’인 사연이다.
이날 트렌드랩506 이정민 대표는 “중국 뷰티 시장은 차세대 로컬 브랜드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직접 목격한 중국 시장 변화와 ‘넥스트 K-뷰티’로의 시급한 대처를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한 이정민 대표의 모든 자료는 메저차이나(MEASURE CHINA)의 빅데이터에 근거했다. 메저차이나는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타오바오와 티몰에서 AI를 활용해 상위 3만 4000개 브랜드, 320만개 상품, 소비자 리뷰를 분석했다.
#1.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2세대 로컬 뷰티 브랜드
2018년 중국 뷰티시장 규모는 4500억RBM(60조원) 이상으로 예측된다. 지난 5년간 연평균 7.8% 증가하며 거대 글로벌 마켓으로 올라섰다. 반면 중국 뷰티 시장 성장을 견인한 K-뷰티가 중국 로컬 브랜드의 약진을 조심해야 한다는 조사결과가 이번 세미나에서 도출됐다.
트렌드랩506에 따르면 올해 타오바오와 티몰에서 K-뷰티의 매출비중은 2분기 12.0%→3분기 10.2%로 감소했으나 중국 로컬 브랜드는 같은 기간 38.6%→39.7%로 성장 추세다. 2세대 로컬 브랜드의 시장 잠식 속도가 크게 작용했다.
지난 6월 단 3개의 제품으로 티몰에서만 론칭한 ‘HKH’는 중국 2세대 로컬브랜드 중 유독 눈에 띈다.
8월 한 달간 9591만위안(약 155.3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스킨케어 브랜드 HKH는 불과 4개월 만에 2억 1만 6376위안(350.5억원)을 팔아치웠다. 9월 매출액은 7735만위안(125억.5억원)으로 6169만위안(약 99.9억원)의 LG생활건강 럭셔리 브랜드 ‘후’와 격차를 벌렸다.
이정민 대표는 HKH의 무서운 성장세를 “중국 소비자에게 프랑스 제품으로 각인시킨 브랜딩과 바이럴 마케팅의 조화가 절묘했다”며 “소비자 사이에서 ‘HKH는 정품만 판매한다’는 신뢰가 굳혀졌다”고 평가했다.
HKH의 모기업은 IT회사다. 이 회사는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대대적인 바이럴 마케팅에 나섰다. 중국 브랜드지만 ‘프랑스에서 온 정품’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심지어 ‘정품’으로 탈태를 위해 프랑스의 한 연구소 인수까지 감행했다. 중국인 특유의 꼼수와 고도의 상술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이후 프랑스에 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을 앞세우며 ‘프랑스에서 온 제품’이라고 당당히 브랜딩 했다. 실제 홈페이지에는 금발머리 외국인이 가운을 입고 연구하는 장면이 연출돼있다.
HKH는 ‘정품’에 집착하는 중국인을 정확히 겨냥했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프랑스 브랜드화’를 성공시켰다. 중국 소비자는 “HKH 제품은 분명히 정품”이라고 믿는다.
#2. 색조 제품과 기능성화장품 시장도 판도 변화 중
색조 시장에서도 차세대 로컬 브랜드로 손꼽히는 퍼펙트 다이어리(Perfect Diary)의 기세가 무섭다. 주 무기는 아이섀도우와 마스카라다.
티몰과 타오바오의 아이섀도우 부문에서 퍼펙트 다이어리의 2~3분기 합산매출액은 3362만위안(약 54억원)으로 TOP 2다. 같은 기간 마스카라 부문에서는 1435만위안(약 23억원)을 기록했다. K-뷰티로는 유일하게 마스카라 TOP 10에 8위로 진입한 이니스프리(1097만위안)보다도 퍼펙트 다이어리는 한 순위 높았다.
기능성화장품 시장의 지형도 1세대에서 2세대로 급변하는 추세다.
HKH와 마찬가지로 IT계열 기업의 코스메틱사업부가 만든 홈페이셜프로(HomeFacialPro)는 오직 에센스만으로 승부수를 던진 기능성 화장품의 신흥 강자다. 대략 149위안(2만4천원대)의 에센스를 4월부터 9월까지 70만개 판매했다.
이정민 대표는 “홈페이셜프로의 매출이 좋은 이유는 약 처방처럼 피부 타입별 세분화에 있다. 중국의 ‘빌리프’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로션·크림부문 1위 제품 ‘Thanmelin’은 시사점이 크다. 일명 ‘게으른 크림’으로 통용되는 Thanmelin은 2~3분기에만 약 40만개가 판매됐다. 가장 큰 이유는 기초제품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바르는 것을 힘들어하는 중국인의 취향을 저격했다는 것. ‘게으름’이라는 키워드가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들자 4월부터 9월까지 매출은 1억1488만위안(185.7억원)을 기록,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3. ‘NEXT K-뷰티 준비’ 필요
이날 세미나에서 이정민 대표는 중국 시장에서 K-뷰티 간 경쟁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대상 설정이 잘못됐다는 평가다. 그는 “유독 우리나라 기업은 서로를 비교하는 경향이 많다”고 운을 뗐다.
이어 “중국 럭셔리 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은 ‘후’를 경쟁상대로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LG생활건강은 ‘설화수’의 추이에 관심이 높다”며 “오히려 SK-Ⅱ, 랑콤, 시세이도 등 상위권의 글로벌 브랜드와 pechoin, proya, HKH 등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로컬 브랜드를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티몰과 타오바오의 분석이 중국 전체 뷰티시장을 해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일부 나왔으나 “K-뷰티가 놓쳤던 정곡을 찔렀다”는 반응이 많았다. “중국 로컬 브랜드의 세대교체 상황을 읽어야 한다. 곧 중국 소비 트렌드의 중심이 될 로컬 2세대 브랜드와의 경쟁에 대응할 ‘넥스트 K-뷰티’가 필요하다”는 그의 견해에 힘이 실리는 까닭이다.
CNCNEWS=차성준 기자 csj@cn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