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업계가 불황으로 인한 재고 관리에 비상인 상황에서 제조가 및 소비자가 인상이 난제로 떠올랐다.
먼저 올해 상반기 대기업의 재고가 전년 동기 대비 49.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기준 상위 500대 기업 중 공시를 통해 재고자산 변동 상황을 분석한 결과다. 산업 전체가 재고에 비상이다.
업종별로 석유화학 71%가 1위로 제조·IT·건설 등이 40%를 넘었다. 제약 33.4% 생활용품 32.9%였다. 이를 볼 때 불황을 겪고 있는 화장품도 재고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화장품 기업 가운데 LG생활건강은 연결재무제표 기준 재고자산이 장부가 기준 1조6억원(‘21)→1조485억원(’22.상)으로 5% 증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4932억원(’21)→5009억원(22.상)으로 2% 증가했다.
코스맥스는 재고자산이 2236억원(‘21)→2277억원(’22.상), 한국콜마 2102억원(‘21.)→2340억원(’22.상) 등 2%, 11% 각각 증가했다. 클리오 211억원, 애경산업 831억원 등도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 브랜드들은 할인행사를 통해 재고 축소에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에 보면 기업들의 할인(50%~90%) 공지가 간간이 눈에 띈다. 대부분 이미지 및 가격 관리를 고려해 주로 자사몰과 사옥에서 직원 및 지인 판매하는 형식이다.
한편 브랜드사들은 제조사로부터는 제조가 인상, 유통채널로부터는 소비자가 인상 요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A기업 대표는 “최근 제조사로부터 신규 발주물량부터 40% 인상을 통보받았다. 이유로는 원자재 가격 인상을 들먹인다”며 난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유통채널로부터도 소비자가 인상 요청을 받고 있다. 상승폭도 최하 30% 이상을 요구하고 있어 판매에 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이라고 전했다.
한 소비자는 “예전에 쓰던 EGF 크림을 같은 가격으로 구입했는데 물건을 받아보니 포장이 바뀌면서 10㎖ 감량한 상태였다. 포장을 살짝 바꾸면서 용량을 줄이는 식으로 실제 소비자가를 인상한 것”이라며 억울해했다.
이렇다 보니 제조사와 유통사 사이에서 브랜드사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원자재 가격이 대폭 오른다는 점을 들어 양쪽 모두 브랜드사에 전가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인상이 판매 감소로 이어질까 브랜드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지경이다.
가뜩이나 화장품 매출은 코로나 2년반 동안 실적 악화로 대부분의 기업이 고전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판매마저 부진한데 제조와 유통의 압박과 소비자 저항의 3중고를 겪고 있다는 호소다. 중소기업들은 제조와 유통의 인상 요구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갑질’이라는 반발도 있다. 사실 불경기에서 제조가와 소비자가를 올리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브랜드사 사이에서 팽배하다. 최근 5500원 화장품이 화제가 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급등은 경제 주체들의 의사 결정에 불확실성을 높이면서 한국 경제가 성장 경로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충격을 줄 수 있다”라며 “국내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은 고물가(인플레이션의 심화)와 이에 따르는 경기 침체 가능성이다”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연구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급등은 ▲외환위기 수준의 인플레인션 근접 ▲물가 상승률 사이클상 정점 접근 ▲서민 체감 경기의 급락 ▲고물가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스티커 쇼크, sticker shock)으로 소비절벽 진행 ▲통화정책의 과잉 대응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등이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스티커 쇼크와 과잉 대응’)
경제전문가들은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대부분 ①수입물가 ②생산자물가 ③기대인플레이션 ④환율 등 대내외 거시변수 모두가 소비자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이례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시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다 화장품 업황과 업계 내부사정도 녹록지 않다는 데 브랜드사들의 고민도 깊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겪은 학습효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소비절벽도 우려된다. 제조사의 고원자재가·고환율·고금리에 따른 활력 약화와 중소 브랜드사의 대응 여력이 취약함이 화장품업계를 짓누르고 있어 상생의 묘를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