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버려야 할 화장품 블랙리스트-20가지 주의성분

오류 가득한 성분 정보가 화해 앱의 기본 정보로 활용...잘못된 신념이 과학 무지와 결합된 사례

현재 화장품문화를 지배하는 수많은 블랙리스트(피해야 할 성분을 모아놓은 리스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단연 ‘가장 피해야 할 20가지 주의성분’일 것이다.


‘20가지 주의성분’은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을 통해 세상에 나왔고 ‘화해’ 애플리케이션에 적용되면서 널리 퍼졌다. 이후 피현정 등 여러 화장품전문가들이 이것을 화장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이용하면서 매우 공신력 있는 정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리스트야말로 지금 당장 폐기해야 할 최악의 리스트라고 생각한다. ‘20가지 주의성분’의 탄생은 잘못된 화장품 평가문화의 시작이 되었고 화장품 케모포비아가 확대되는 발단이 되었다.


애초에 우리는 왜 이 리스트를 믿게 되었을까? 과연 이 리스트가 신뢰할 만한가? 과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절대로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신뢰할만한 과학적 출처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도 아니며 믿을만한 과학지나 과학기관에 의해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다. 화학자 및 화장품연구원들에 의해 검증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리스트를 무작정 신뢰했다. 화학성분에 대한 불안이 고조된 상태에서 이 리스트를 구원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전문가가 대중의 불안을 달래는 가장 얄팍한 방법은 블랙리스트를 던져주는 것이다. 암에 걸릴까봐 불안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피해야 할 발암물질 10가지’를 주거나, 살이 찔까봐 불안한 사람들에게 ‘다이어트 중 꼭 피해야할 음식 30’ 등의 목록을 주는 것이다.


여드름이 심한 사람에겐 ‘모공을 막는 성분 65’, ‘여드름을 유발하는 음식 10’ 등의 리스트를 준다. 그러면 안심해할 뿐만 아니라 이런 걸 알려준 전문가에게 무한한 감사와 신뢰를 느낀다. 전문성을 인정받고 영향력을 넓히는 일이니 많은 전문가들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아마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의 저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도대체 ‘20가지 주의성분’의 내용은 뭘까? 많은 사람들이 20개 성분의 목록만 알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래에 그 주요내용을 소개한다. 긴 내용이지만 꼭 읽어보기 바란다. 약간의 상식만 발휘하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어쩌면 너무 황당해서 읽다가 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표기된 성분명과 거북한 띄어쓰기도 책에 적혀있는 대로 그대로 옮겼다.)



가장 황당한 것부터 순서대로 짚어보자.
 
첫째, 화장품이 먹거나 흡입하는 것인가?
이소프로필알코올이 두통, 어지러움, 정신쇠약, 혼수상태를 유발하고, 폴리에틸렌글라이콜이 간장, 신장 장해를 발생시키고, 옥시벤존이 순환기, 호흡기, 소화기 장애가 일으킨다는 건 모두 먹거나 흡입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먹거나 흡입해야 한다.
화장품은 먹는 것이 아니며 이런 성분들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둘째, 독성이 화장품과 무슨 상관인가?
독성(toxicity)은 물질이 갖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다. 독성은 해당 물질을 고농도로 섭취하거나 흡입하거나 피부에 발랐을 때 나타나는 인체반응을 정리한 것이다. 얼마나 먹어야 치사량인지, 얼마나 흡입해야 암이 발생하는지, 기형아를 낳는지 등을 동물실험 등에 근거하여 정리해놓은 자료이다. 동물에게 해당성분을 죽을 때까지 먹이고, 암이 발생할 때까지 흡입시키고, 기형아를 낳을 때까지 노출시킨, 이런 정보가 도대체 화장품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셋째, 발암논란이 있는 성분이 화장품에 들어가면 무조건 DNA를 손상시키고 암을 유발하는가?
DNA 손상이 암을 유발하려면 상당히 많은 손상이 누적되어야 하고 세포가 노화하고 기능이 떨어지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알코올과 흡연은 이런 메커니즘이 입증되어 1군 발암물질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알코올과 흡연도 실제로 암을 일으키기까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손상이 쌓여야 하며 반드시 암으로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화장품에 조금 들어가는 물질이 체내로 흡수되어 이런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넷째, 식약처와 FDA가 미쳤다는 건가?
이들의 주장대로 아보벤존, PEG 등이 피부에 조금 바르는 것으로 암을 일으키는 그렇게 막강한 성분이라면 이걸 화장품성분으로 허용한 식약처는 미쳤다는 뜻이 된다. FDA와 헬스캐나다, 일본 후생성, EU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가 모두 미쳤다는 뜻이다. 이 많은 정부기관들이 마구잡이로 발암물질을 허용했다면 당장 국민의 심판을 받고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저자들은 각국의 감독기관이 발암논란이 있는 성분을 위해평가도 없이 화장품에 허용했다고 생각하는가?


다섯째, ‘배합한도’가 있고 ‘구 표시지정성분’이면 다 위험한가?
배합한도와 표시지정성분은 단어가 주는 뉘앙스와는 달리 반드시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다. 배합한도는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함량을 뜻하고, 표시지정성분은 알레르기 보고가 있으니 조심해야 할 성분을 뜻한다.


독성이 강한 성분에는 거의 대부분 배합한도가 있다. 파라벤, 아보벤존, 옥시벤존, 페녹시에탄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기능성 성분인 비타민C, 알부틴, 나아이신아마이드도 배합한도가 있다. 파라벤이 배합한도가 있어서 나쁜 성분이면 비타민C와 알부틴도 나쁜 성분인가?


배합한도는 안전한 화장품을 만들기 위한 기준이다. 저자들은 좋은 것에 나쁜 프레임을 씌워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여섯째, 알레르기 유발성분이 들어가면 아무에게나 알레르기가 유발되는가?
알레르기는 특정 물질에 감작(sensitization)이 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돼지고기에 감작이 있는 사람만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일어나고, 땅콩에 감작이 있는 사람만 땅콩 알레르기가 일어난다. 그러니 파라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만 파라벤을 조심하면 되고, 향과 색소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만 향과 색소에 조심하면 된다. 평생 어떤 물질에도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극소수의 사람이나 겪을 알레르기를 거론하며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동이다.


일곱째, 위험을 부풀리기 위해서라면 아무 논문이나 다 끌어들이는가?
화장품 성분이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려면 화장품과 관련된 연구결과를 보아야 한다. 즉, 피부에 발랐을 때, 화장품에 일반적으로 배합되는 농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으로 실험했을 때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SLS와 SLES에 대해 말하면서 “눈 근처 피부에 바르는 정도로도 눈에 악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두 성분은 세정제라서 눈 근처 피부에 바르고 놓아둘 일이 없다. 또 “백내장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건 동물에 백내장을 유발시키기 위해 일부러 SLS 20%를 매일 눈에 주입해서 나온 결과다. “상처치료를 늦춘다”, “어린이의 눈에 상해를 줄 수 있다”는 것도 동물의 눈에 인위적으로 고농도의 SLS를 주입해서 나온 결과다. 이런 엉뚱한 논문을 가져와 대중에게 겁을 주는 것이 화장품 전문가의 역할인가?


TEA가 안과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나, 트리클로산이 수정능력을 저하시키고 성호르몬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나, 페녹시에탄올이 체내흡수로 마취작용을 한다는 것은 모두 엉뚱한 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TEA에는 2.5% 배합한도가 있다. 페녹시에탄올도 1% 배합한도가 있다. 이런 배합한도로 피부에 바르는 것으로는 수정능력 저하, 성호르몬교란, 마취작용 등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안과질환은 더더욱 일어나지 않는다. 
 
여덟째, 시중에 떠도는 괴담을 인용하는 것이 전문가가 할 짓인가?
미네랄오일에 대한 저자들의 주장은 어떤 과학문헌에서도 찾을 수 없다. 독성정보에도, 유해성과 위해성 정보에서도 이런 내용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천연화장품회사들과 환경단체, 여성단체들이 만들어낸 온갖 유언비어와 괴담을 합성해놓은 것이다.


호르몬류에 대한 설명에서도 괴담이 등장한다. 립스틱에 함유된 에스트로겐 때문에 여자 아이가 질 출혈을 겪고 성기와 유방이 과다 발육되었다? 어떤 과학지도 이런 케이스를 보고한 적이 없다. 이것은 화장품 속의 여성호르몬 유사성분에 대한 괴담과 립스틱을 많이 바르고부터 여성들의 가슴이 커졌다는 세간의 속설이 결합된 창작 소설이다. 어쩌면 막장 뉴스를 만들어내기로 유명한 영국의 <데일리미러>나 <더선> 같은 황색 타블로이드지가 그 출처일지도 모르겠다.


아홉째, 금지된 성분을 반드시 피하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호르몬류는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이미 ‘사용할 수 없는 원료’로 지정된 성분이다. 법적으로 배합이 금지된 성분을 반드시 피해야 할 성분으로 꼽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화장품회사들이 이런 성분을 몰래 넣기라도 한다는 뜻인가? 지난 수 년 간의 뉴스를 검색해봤지만 화장품에서 에스트로겐이 검출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쓸데없는 걱정과 화장품회사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이상한 주장이다.



열째, FDA를 들먹이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
FDA는 화장품에 사용되는 PEG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안전하다고 밝혔고 아무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조사 중인 것은 어린이용 설사제에 들어가는 PEG 성분이다.


FDA가 합성착색료를 1992년부터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FDA는 화장품 들어가는 색소를 종류별로 구분해서 사용부위, 사용방식, 사용제한을 두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화장품은 철저히 이 규정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매우 안전하다고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색소에 의한 알레르기 부작용은 매우 드물다고도 밝히고 있다. 아래에 링크를 첨부한다.


FDA의 색소 설명 페이지
https://www.fda.gov/ForConsumers/ConsumerUpdates/ucm048951.htm



‘20가지 주의 성분’은 잘못된 신념이 과학에 대한 무지와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오류로 가득한 정보가 가장 신뢰할만한 정보로 둔갑하여 한국 여자들이 가장 의지하는 화장품 애플리케이션의 기본 정보로 활용되고 쇼핑의 바이블처럼 인식되고 있다.


‘20가지 주의성분’을 탄생시킨 두 명의 저자 중 한 명인 이은주는 올 초 방영된 ‘겟잇뷰티 뷰라벨’ 코너에서 주의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20가지 주의성분’을 그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


▶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https://blog.naver.com/the_critic/221315942076)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화장품비평가 최지현은...

일요신문 외신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문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우연히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읽고 브랜드와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성분만으로 화장품을 구입하자는 데 공감, 번역했다고 그는 말한다. 화장품회사의 터무니없는 광고나 근거 없는 미용 정보를 바로 잡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베스트셀러인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의 공동 저자이다. 현재 블로그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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