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화장품 성분 중에 가장 심한 오해와 음해를 받는 성분은 뭐니 뭐니 해도 파라벤(Paraben)일 것이다.
파라벤이 위험성을 알리는 용도로 만들어진 로고들. 주로 천연화장품회사, 환경단체, 화장품컨설팅 업체에 의해 만들어졌다.
파라벤에 대한 음해는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천연화장품 회사들의 천연성분 마케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대기업 중심의 화장품 시장에서 신생 회사들이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블랙 마케팅, 즉 공포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이들은 그때까지 대기업들이 가장 흔하게 써왔던 성분들을 집중 공략했다.
샴푸와 폼클렌저에 흔히 들어가는 세정제인 ‘소듐라우릴설페이트’(Sodium Lauyrl Sulfate), 미네랄오일(Mineral Oil), 그리고 파라벤이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었다.
천연화장품 회사들이 퍼뜨린 파라벤 불량정보를 공신력 있는 정보로 둔갑시킨 것은 EWG이다. 사람들은 EWG의 정체를 몰랐다. 환경단체라면 당연히 옳은 소리만 하고 정부와 화장품회사들이 숨기는 더러운 진실을 캐내는 줄 알았다. 이들이 과학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짜깁기 된 정보로 공포를 조성하고 뒤로는 굴러들어오는 후원금을 챙기고 임원들이 억대 연봉 잔치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2008년 미국 국세청자료에 의하면 EWG 회장인 케네스 쿡은 연봉 약 22만 달러에 보너스 2만1,000 달러를 받았고 연구 부회장인 리처드 와일즈는 연봉 약 18만 달러에 보너스 약 2만 달러를 받았다. 이밖에도 임원진 대부분이 12만~15만의 연봉을 받고 있다. 참조 ‘The Revealing Truth of the Money Trail of EWG’, <Personal Care> 2010년 https://personalcaretruth.com/2010/07/the-revealing-truth-of-the-money-trail-of-ewg/)
EWG는 활동초기부터 파라벤에 대한 음해정보를 쏟아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인의 99% 소변에서 메칠파라벤이 검출되었고 93%에서 프로필파라벤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터뜨린 것이다.
사실 이것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미국인의 파라벤 노출량을 역추적하기 위해 실시한 조사로 이미 뉴스와 홈페이지를 통해 다 공개돼 있는 정보였다. EWG는 마치 이것이 화장품이 위험하다는 증거라도 되는 듯 정보를 변질시킨 것이다.
CDC의 발표자료를 보면 EWG의 발표와는 톤이 완전히 다르다. 파라벤은 체내로 흡수되면 ‘파라하이드록시벤조산’으로 대사되어 소변을 통해 빠르게 배설된다. 다시 말해서 몸에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소변을 통해 배출되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메틸파라벤은 평균 리터 당 63.5㎍이 검출되었고, 프로필파라벤은 평균 리터당 8.7㎍이 검출되었다. 에틸파라벤과 부틸파라벤은 메틸과 프로필의 10분의 1 이하로 적게 검출되었다.
CDC는 “소변에서 파라벤이 검출되었다는 것이 파라벤이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파라벤 검출 조사는 보건의료인들에게 파라벤 노출량에 대한 참고 수치를 제공하기 위해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EWG의 공포 마케팅이 득세하면서 CDC의 이런 설명은 들리지도 않았다.
CDC의 파라벤 팩트시트 링크https://www.cdc.gov/biomonitoring/Parabens_FactSheet.html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이 파라벤 음해에 기름을 부었다. 이 책에서 이은주와 구희연은 파라벤이 “남성 정자 수 감소”, “여성화 촉진”, “DNA 공격”, “암세포를 만들고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세포를 사멸시킨다”,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 “유방암 유발 가능성이 있다” 등의 연구가 속속 발표되었다고 말한다.
또 이들은 “학계는 파라벤을 경계하고 계속 연구하며 사용 중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화장품협회 등은 ‘파라벤은 이미 안전성이 확실히 입증된 물질이며 파라벤을 각종 화장품에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자료가 있다’며 학계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고 썼다.
과연 사실일까? 이것은 약간의 진실에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놓은 주장이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학계’는 어디일까? 정말로 화장품회사들이 학계의 주장을 일축하며 독단적으로 파라벤 사용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걸까? 그럼 식약처는 뒷짐 지고 구경만 하나? 감독기관인 식약처가 화장품회사들의 독단에 질질 끌려간다는 걸까?
파라벤에 대해서 한두 건 논문을 발표했다고 해서 모든 연구자들이 ‘학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파라벤이 에스트로겐 유사효과나 유방암 유발과 큰 관련성이 없다는 ‘학계’의 논문도 수두룩하다.
논문은 단지 발표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다른 과학자들의 검토를 통해 논문의 신뢰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또 메타분석을 통해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서로 일치된 결과를 내는지 상반된 결과를 내는지 종합 분석해야 한다. 과학에서는 이것이 검증을 위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메타분석만을 전문으로 하는 과학자들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렇게 동료검토와 메타분석으로 검증에 검증을 거쳐서 만들어진 의견이 그제야 ‘학계’의 의견이 된다. 구미에 맞지 않는 것은 버리고 맞는 연구결과만 끌어와서 감히 ‘학계’의 의견이라고 소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장품에 있어서는 식약처, FDA, 헬스캐나다, 일본후생성, EU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 등이 바로 이렇게 메타분석을 통해 학계의 의견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화장품성분을 피부에 발랐을 때의 위험을 평가하고 배합한도와 검출한도, 안전기준을 정하는 일을 한다. 화장품 원료의 규격, 미생물 한도 기준, 색소 규정, 각종 시험방법을 개발하고 가이드라인을 내리는 것도 이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화장품회사들이 이런 규정을 어기면 판매중지, 과태료, 제품 회수, 폐기 등의 행정처벌을 내릴 권한도 갖고 있다. 그런데 화장품회사들이 학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파라벤 사용을 강행한다? 화장품회사가 식약처보다 힘이 세서 마음대로 위험한 성분을 쓴다는 건가? ☞ 파라벤 [下]에 계속
▶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https://blog.naver.com/the_critic/221365584964)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화장품비평가 최지현은...
일요신문 외신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문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우연히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읽고 브랜드와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성분만으로 화장품을 구입하자는 데 공감, 번역했다고 그는 말한다. 화장품회사의 터무니없는 광고나 근거 없는 미용 정보를 바로 잡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베스트셀러인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의 공동 저자이다. 현재 블로그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