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복이 1년을 넘기면서 정경 일치의 중국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간 중국특수의 단물에 빠지다보니 중국이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실험 국가’라는 속성을 잊고 있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을 제대로 읽어야만 사드 보복 같은 돌출 정치리스크에도 대처할 수 있다. 우리로서는 별거 아닐 수 있는 문제를 ‘보이지 않는 무역장성’으로 길들이려는 중국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한국무역협회는 '대중 무역애로 신고센터'에 접수된 60개사의 대중 수출 보복 조치 사례를 분석한 자료를 냈다.(3월 8일~17일) 이 기간 동안 화장품 업체가 9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통관 지연·인증 불가·검역·계약 보류·불매·홍보 금지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했다.
국제 무역을 하다보면 이러저러한 일을 수없이 겪은 그들이었지만 정작 중국은 럭비공 같이 팔방으로 튀어오르는 막무가내식이어서 갈피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게 그들의 전언이다. 또한 차제에 K뷰티의 글로벌 경쟁력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사드 몽니가 업계에 던지는 피해는 크지만 지난 3년간의 중국 드라이브 일변도의 과속을 조절할 필요도 있다는 거다.
사드 보복 기간을 재충전의 기회로
톡 까놓고 얘기해서 그동안 벌어들인 수입으로 재충전하고 K뷰티의 진로를 재설정하고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언론에서는 중국 보복으로 피해 입은 국가(일본‧필리핀‧베트남 등)의 사례를 들며 K뷰티의 활로 모색도 주문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한‧중 간의 정치‧외교 갈등은 상존해서 언제든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이 강대국엔 약하고, 약소국엔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10여 년 수출 화장품 기업을 운영하는 L대표는 “중국의 사드 보복은 K뷰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 속내는 K-컬처(Culture)에 대한 경계심이 짙게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바링허우(八零後 世代), 주링허우(九零後) 세대가 한류에 빠져 있어 이를 제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은 작년 11월 18일 ‘위성방송관찰생’이라는 네티즌이 “역대 이래 가장 엄격한 한한령이 발표됐다”며 강소성 위성방송사의 내부 통보문을 캡처해 블로그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그 내용은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 한국 연예인이 참석한 예능프로그램 및 한국드라마, 영화 번역작 등은 방송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이 문건은 중국 광전총국에서 정식문건으로 작성 되지 않았지만 관련 지방방송국 및 위성방송 등 관계자들에게 하달이 된 통보며, 지역방송과 위성방송, 인터넷방송까지 포함돼 이후 스크린에서 한국 연예인의 얼굴은 보기 어려워졌다.
최근 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온 K총경리는 “중국의 25~35세 여성에게 한국화장품은 '한류 스타가 쓰는 화장품'으로 인기”라며 “기술력과 제품 안전성, 소비자 요구조건에 맞춘 마케팅도 주요 이유”라고 말했다. L대표는 “젊은층에 널리 퍼진 한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속내가 사드 보복 조치의 일환이자 한류 차단 이유라고 풀이했다.
시진핑 ‘중국정신’의 선양 강조
중국 시진핑 주석의 21세기 비전이 중국몽(中國夢)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꿈은 반드시 중국의 길(中國道路)을 걸어야 하고, 중국의 정신(中國精神)을 선양해야 하며, 중국의 힘(中國力量)을 결집해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글로벌 표준이 아닌 중국적 표준(China Standard)에 따라 대국 즉 ‘중국의 제국화’ 만들기를 강조한다.
중국 젊은층에 퍼진 한류는 ‘중국 정신을 선양’하려는 시 주석의 방침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사드 보복으로 한한령을 발동하고 또 다른 한류인 K뷰티를 겨냥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손봐야 할 한류’를 시의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게 L대표의 얘기다.
중국몽을 요약하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중화 중심의 평화질서와 단순 부강의 나라가 아닌 도덕적‧문화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시진핑의 구상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드 배치=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 체계 편입’으로 한국이 미국의 견제전략에 합류한다고 시 주석은 이해한다.
또 한류는 중화 문화 부강에 부정적이다. 사드 보복같은 중국의 몽니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상존하는 문화 충돌’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