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화장품 빅2는 각각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시세이도와 가오다. 비즈니스 모델로 보면 아모레퍼시픽과 시세이도는 화장품전문회사, LG생활건강과 가오는 화장품+생활용품+소비재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2017년 3월 중국의 방한 금지령은, 4개사의 작년 실적을 극명하게 가르는 분수령이 됐다. 바로 전략 차이다.
지난해 방일 중국 관광객 수는 736만명으로 방한 중국인 312만명을 압도했다. 드러난 실적만 보면 ‘프레스티지 브랜드 육성’ 전략을 편 LG생활건강과 시세이도가 선전했다.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사드 보복에 따른 실적 하락을 겪어야 했다. 가오는 방일 중국인의 백화점과 면세점 쇼핑에서 프레스티지 브랜드의 부재로 시세이도의 질주를 부러워해야만 했다.
중국 관광객은 ‘K-뷰티의 추락, J-뷰티의 귀환’을 가시화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6년 WWD 순위 7위로, 5위 시세이도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2017년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은 시세이도 매출의 73%(‘16)→51%(’17)로 더욱 벌어졌다.
3월 유커의 방한금지령이 발표되자, 일본 정부는 4월에 중국인에 대한 비자발급요건을 완화했다. 골드 신용카드를 소지한 중국인에게 개인관광 단수비자 제출 서류를 간소화하고, 상당한 고소득자와 그 가족에게 발급하고 있는 복수비자를 관광 목적이 아닌 상업 목적으로도 이용 가능하게 함으로써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최근 ‘일본 화장품·유통업체 탐방기’를 펴낸 유진증권 이선화 화장품컨슈머는 “2014년 일본 소비세를 8%로 인상(기존 5%)함에 따라 세금 환급 범위가 확대되어 2014년과 2015년 관광객 소비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2015년에는 한국의 메르스 발생에 따라 일본 방문 관광객이 사상 최대인 1974만명을 기록했다”며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목표치로 방일 관광객 수 4000만명, 소비액 8조엔을 설정했다. 또 2020 도쿄올림픽이 예정돼 있어 방일 관광객과 소비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기는 아베노믹스로 회복되고 있지만 소비부문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특징은 백화점의 부진과 편의점의 견조한 성장이다. 일본인들은 가치 부여 특정 상품 소비에는 과감한 지출을 하면서도 일상생활 소비는 극도로 줄이는 경향을 보인다.
대신 엔화 약세는 일본을 찾는 관광객을 증가시켰다. 그 중심에 중국인 관광객이 있다. 사드 이슈로 인해 방일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작년 4월부터 일본 백화점에서 화장품 월별 매출액은 15% 이상 성장했다. 의류, 가정용품, 식품 등 주요 품목의 매출액 부진과 달리 화장품은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이유는 중국인 관광객 때문이다. 한국행 관광 상품 판매가 금지됨에 따라 일본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백화점에서 고급 화장품을 싹쓸이 하면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게 시세이도다. 시세이도는 2020년 1조엔 매출을 목표로 했는데 2017년 1조51억엔(+18.2%)으로 3년 앞당겨 달성했다. 시세이도 품질에 만족한 중국 소비자들이 중국에 돌아가서도 시세이도 화장품을 재구매하여 지속적인 매출 신장이 이뤄지고 있다.
시세이도의 전체 매출액 중 프레스티지 브랜드의 비중은 42%에 달한다. 초고가 브랜드 끌레 드 뽀 보떼는 지난 3년간 연평균 33% 성장률을 보이며 2017년 1000억엔을 달성했다. 시세이도의 프레스티지 퍼스트 4대 브랜드는 시세이도·끌레 드 뽀 보떼·나스(NARS)·입사(IPSA)다.
유진증권의 이선화 연구원은 “시세이도의 면세점 매출은 인바운드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중국인들이 고급 사치재에 대한 소비에는 씀씀이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에게 고부가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브랜드 파워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세이도의 독주를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게 가오다. 가오는 전체 매출액의 40%가 화장품 에서 발생하지만 뚜렷한 브랜드 이미지가 없다는 게 약점. 주로 중저가 채널을 통해 판매하는 매스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가오의 작년 화장품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했다. 중국인 인바운드 수요를 백화점 채널의 브랜드인 SUQQU가 선전하지만 시세이도에 비해 열세다. 한때 업계 4위인 가네보를 인수했으나 백반중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했다. 올해 화장품 부문을 코스메틱과 스킨&헤어케어 부문으로 나누고, 더마케어 브랜드를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인 관광객 급감으로 면세점과 백화점에서의 매출 부진이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중국 현지에서도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가 20% 매출 하락을 기록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브랜드 이미지 실추를 의식해 면세점에서의 구매 수량 제한 조치를 취했지만 실적 하락을 막진 못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럭셔리 브랜드인 후와 숨만으로 1.4조원+0.4조원=1.8조원을 달성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후가 13년만에 1조원 매출을 올린 기록은 시세이도 121년, 에스티로더 72년, SK-Ⅱ 38년과 비교할 때 매우 빠른 성장세다. 차별화된 제품과 브랜드 스토리로 중국·싱가포르·홍콩 등 아시아 전역에서 고급화 전략으로 브랜드 가치를 키워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진증권 이선화 화장품컨슈머는 “일본 업체들의 전략을 살펴보면 △시세이도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프레스티지 브랜드 육성과 온라인 채널 개발을 △가오는 비오레화장품을 중점 브랜드로, 케미칼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소비재 시장 전반에 진출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고세도 중국인 대상 프레스티지 브랜드 육성+밀레니얼 세대 대상의 색조화장품을 △폴라오르비스홀딩스는 고객 세분화로 고가와 저가 브랜드로 사업 포트폴리오 양극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